두번째 아침을 맞이 했어요. 호기심 가득한 아침을 맞이 했어요.
부산에서 부터 시작된 긴 여정으로 우리는 모두 지쳐 버렸다. 첫날은 푹 쉬기로 했다.
에어비앤비로 타우랑가 파파모아 쪽의 집을 검색해 보니 대체로 숙박비가 비쌌다. 그 중에 그래도 마당있는 단독하우스가 눈에 띄어 그 집으로 예약했다. 하루 자고 보니 알겠더라.
"아. 나무집이 사방에서 바람이 마구 들어 오는 구나. 자칫 입돌아 가겠다."
씻을 때 느꼈다. 뜨거운 물로 씻으면 김이 나서 욕실 안이 훈훈해 지는데, 사방에서 바람이 들어 오니까 뜨거운 김이 찬공기를 만나 식어버린다. 차가움을 가라 앉혀 주는 정도랄까. 씻는데 이가 덜덜 떨렸다.
좋은 점도 있다. 마당의 절반 이상이 시멘트로 덮여져 있어 생각보다 벌레는 많이 없는 것 같았다. 종종 바퀴벌레가 보였다. 데크에 걸려 있는 흔들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니 이곳이 천국이지 싶더라. 밤에 저기에 누워 있으면 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의 딸은 견우와 직녀 동화책에서 은하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보고 "엄마, 은하수가 뭐야?"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은하수는 하늘의 별들이 은빛으로 빛나며 흐르는 강물 처럼 보이는 걸 말해. 그러려면 하늘에 별이 무지 많아야해." 라고 알려 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의 딸은 하늘에 별이 많다? 많이 보인다?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사는 47층 아파트에서 밖을 봐도 별이라곤 보이지 않을때가 많고, 간혹 보여도 흐릿하게 보였으니까. 그런데 쓰레기를 버리러 밤에 문밖을 나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우리딸이 갑자기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우와. 저것들이 별이다." 라며 휘황찬란한 하늘의 무수한 빛들을 보고 한참을 넋을 놓고 별이야를 중얼 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하늘의 별을 보기가 어려웠으니까.
다음날 아침 이층 창문으로 보는 선명하고 투명한 세상. 창문 너머의 풍경은 액자속 사진과 닮아 있었다.
아파트는 없고 나무와 단층 집으로만 채워진 세상. 새파란 하늘과 아오테아오라에 걸맞게 뭉게구름이 펼쳐진 하늘. 이곳이 바로 뉴질랜드 타우랑가의 모습이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 사진에 담기지가 않아 아쉽다. 사진속에 큰 타올 두장이 널려 있다. 전날 쥬스를 먹다가 거미를 보고 놀라 쏟아 버렸다. 그래서 급한데로 수건으로 닦고 세탁을 해서 널어 놓았다. 그리고 오른쪽에 보이는 노란 열매는 레몬이다. 레몬이 주렁주렁 열리다 못해 바닥에 닿아 있다. 호스트가 마당의 레몬은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 탄산수에 레몬즙을 넣어 먹어 봐야지. 미드에서 보면 마당의 레몬을 따서 바로 즙을 내어 레몬에이드를 먹더라고. 가까이에서 보면 마트에 파는 레몬 처럼 매끄럽고 샛노랗진 않다. 우둘투둘하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진짜 집에서 그냥 막 키우는 과일 나무다.
집밖을 나오니 평범한 동네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도 분명 낮에 집에 도착했는데, 어제는 이런 모습을 못본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세식구가 차에서 골아떨어져 동네의 풍경을 못보고 지나친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한국의 부산과는 다른 모습에 신기했다. 도로도 쭈욱 뻗어 있고, 집들이 다 마당이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구글에 검색하니 학교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고, 비치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바다를 가보자고 했다.우리 가족은 해루질, 낚시, 갯펄 가는걸 좋아 한다. 그래서 바다가 가까운 동네에 집과 학교를 알아 본것이다. 구글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세식구는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길을 걷다 보니 잔디 위에 주차된 차, 도로가에 주차 된 차들이 보이고 길가에 담배꽁초나 가래침이 없다는 점 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바다로 가는 길이 보였다. 길을 건너려고 보니 진짜 횡단보도가 안보여. 지나가는 차가 많지 않고 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거지?"
우리는 때에 맞춰 길을 건넜다. 길을 건너고 다시 보니 왼쪽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호주에서도 느꼈지만 이곳도 마찬가지로 로컬 사람들은 달리기로 운동을 하나보다.
아직 바다가 보이려면 조금 더 가야 하는 것 같은데. 타우랑가의 바다가 파도소리보다 고운 모래로 먼저 우리를 반겨 줬다. 우리는 곧장 신발을 벗었다. 왠지 뾰족한 가시나 유리 조각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 발바닥으로 차갑고 서늘한 부드러움이 전해 졌다. 야트막한 덤불같은 식물들이 끝없이 펼쳐진 좁다란 길을 따라 한참 걸으니 파도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바다였다. 한국의 바다와 별 차이 있을까? 바다가 거기서 거기지 싶었는데 아니내? 드 넓은 백사장이 저기서 저 끝까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선명한 파란 하늘에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에 푸른 바다, 바다에서 뛰어 노는 개들과 간간히 수영하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여기 있었구나.
여름에는 이곳으로 학교에서 서핑 수업을 하러 온단다. 상상만 해도 너무 멋진 일이 아닌가. 잠자코 바다를 보고 있으니 내 병까지 파도에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병원-집 병원-집 반복되는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이곳에서 온전히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는 남편이 함께 있어 안심이 됐다. 감사한 일이었다. 내 삶을 돌려 받기 위해 치료를 건뎌낸 나 자신도 기특했다. 그렇게 세 식구는 바다를 걸으며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돌이켜 보니 암은 내 삶의 스승이었다.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되고, 진짜 나의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게 해 주었고, 추억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떠나고 싶은데 주저 없이 떠날 수 있게 해준 것은 암때문이었다. 암과 함께 하는 이번 생은 여행의 연장 선상이다.
"암!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