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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김에 뉴질랜드
Nov 18. 2024
리나는 8일 넘게 고열을 동반한 감기를 앓고 있다. 목요일부터 시작된 기침은 날이 갈수록 심해 진다. 점점 더 심해지는 기침 탓에 목도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다. 모든 것을 토해낼 것 같은 기침은 구토로 이어진다. 밤사이 심하게 기침을 한 탓에 오늘도 학교 가기를 포기하고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지난밤 잠들기 전,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많이 못 보내어 슬퍼. 라며 눈물짓던 아이는 아침에 학교를 못 가게 되자 옅은 미소를 짓는다. 따지고 보면 지난 일주일간 감기로 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 시간 동안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보드 게임, 함께 영화 시청, 유튜브 시청, 마인크래프트 게임, 원카드 놀이를 했지만 아이는 부족했나 보다. 한창 많이 놀고 싶은 나이니까, 믿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놀고 싶은 마음은 끝이 없고, 그 마음의 한도는 없다. 흥청이 망청이처럼 끝없이 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year3의 끝자락에 있는 아이에게는 정확은 가르침이 필요하다.
아프다 하여 쉬는 것이지, 아픈 것을 무기로 놀기 위해 학교를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때때로 아이는 마음이 아플 것이다. 사실을 이야기하는 엄마를 미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날카로움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잘못 생각하는 부분은 잘못되었다 가르치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부족한 부분은 알려 주어야 한다.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다 보면 보인다. 혼자 유학을 와 홈스테이에서 지내고 생활의 전반은 유학원에서 관리를 해주는 관리형 유학생들. 그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짠하다. 비단 한국 엄마 눈에만 그렇겠는가. 키위 엄마들도 이해 불가라고들 한다.
영어가 뭐길래 저렇게 어린아이를 혼자 보낼 수가 있는 거야? 한국에서는 영어가 부모가 자식의 손을 놓을 만큼 중요해?
나는 솔직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무엇을 위해서 그러한지. 그렇다고 의대 보내려고 라는 말은 차마 하질 못하겠다.
한국인 부모는 자녀가 언어로서 영어를 배웠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하고, 혹은 더 나은 직업을 갖기를 바라서 일 수도 있어.
한국에서 아이만 뚝 보내놓은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나 역시 이민자로 유학생 자녀를 키우다 보니 엄마의 손이 끝없이 필요하단걸 느낀다. 어리면 어려서 필요하고, 크면 커서 필요한 것이 유학생이다. 아이도 엄마도 유학생활을 함께 처음이다 보니, 그래도 어른이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 부분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관리형 부모는 많은 돈을 내고 유학원을 통하여 아이를 보내겠지만 말이다. 홈페이지에 보이는 관리형 유학생들의 생활에 현혹되면 안 된다. 미디어의 단점은 좋은 점만 보이게 만들고 즐거워 보이는 것만 편집할 수 있단 거니까.
뉴질랜드에서는 국, 영, 수를 배우러 학원을 가는 게 아니다. 스포츠와 예체능을 위해 레슨을 간다. 그러면 누가 필요한가? 바로 부모의 픽드롭이다. 부모가 아니고 아이들만 유학을 보냈다면, 부모와 함께 온 유학생이 5개의 레슨을 받는다면 관리형 유학생은 몇 개의 레슨을 받으러 갈 수 있을까? 뉴질랜드는 아침에 도시락 2개를 싸서 학교를 가야 한다. 관리형 유학생의 도시락은 어떨까?
아이들은 집이라는 나만의 울타리 안에서의 편안함, 안락함을 통해 외부의 상처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치유받고 이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의 가정에서 지내면서 마음 편히 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다면 어떨까? 뉴질랜드의 아이들이 아무리 순하다 한들 또래 여자아이들 사이의 문제는 한국이나 이곳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빈도와 강도의 차이일 뿐. 가끔 만나는 관리형 유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이거나 무표정일 때가 많다.
뉴질랜드 학교는 시즌별로 스포츠가 있다. 이번 겨울 리나는 넷볼을 했다. 리나가 속한 넷볼 팀에서 케임브리지로 원정 경기를 갔던 적이 있다. 리나의 넷볼팀은 우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7명은 가족들끼리 친한 사이인 듯 보였다. 그리하여 키위가족이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 가족에게 먼저 인사할 일도 없고,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다. 고로 우리 셋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굉장히 뻘쭘하고 또 무지하게 어색한 상태다. 넷볼 팀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한숨이 푹푹 나올 정도로 부조리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차별을 2 텀 내내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최대한 웃으며 인사를 했고, 먼저 이야기를 걸려고 애썼다. 그 사이 리나도 많이 발전하여 친구도 2명 정도 사귈 수 있게 되었고, 리나가 잘 적응해 주어 다행이다 싶다. 어쨌든 굉장히 뻘쭘한 상태로 캠브리지라는 인근 도시로 주말에 원정을 가게 되었다. 캠브리지 넷볼 코트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학교별로 텐트도 치고 말이다. 원정 경기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했다. 계속 경기를 한 게 아니고 한 게임하고 30분 쉬고, 다음 게임하고 2시간 쉬고 뭐 이런 식이었다. 같은 팀 아이들은 즐거웠고, 함께 온 부모들은 서로의 안부와 일상을 나누느라 즐거웠고, 나와 남편은 뻘쭘했다.
우리 부부는 투명인간이다.
웃기지만 그러했다. 한국에서는 의사 남편에 좋은 집에 외제차를 타는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넷볼 팀의 멤버들을 만나면서 현타가 세게 왔었다. 매주 토요일 현타가 오는 정신을 붙잡고 리나만을 생각하며 넷볼 코트로 향했다. 최대한 밝게 인사하고, 최대한 억울하다 빡친다는 표정을 숨기려 애썼다. 그리고 리나에게는 마칠 때 코치에게 Thank you for teaching me라고 직접 이야기하게 가르쳤고, 헤어질 때는 친구가 인사를 제대로 안 받아도 웃으며 인사를 반드시 하게 시켰다. 타인이 나를 업신여긴다 하여 내가 기분 나쁜 티를 낼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바라보더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왜냐? 내가, 리나가, 남편이 영어를 계속 못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도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으니 언젠가 영어가 늘 테니까.
어쨌든 나와 남편이 서있고, 넷볼 팀 멤버의 가족이 모여 서있고. 2 그룹으로 나뉘어 서있는 모습 자체가 리나의 심리를 위축시킬까 봐 나는 최대치로 들이 대고 이야기를 나누려 애썼다. 부모가 2그룹을 나뉘어 있는 모습은 리나에게 좋을 게 없으니까 말이다.
빡치지만 웃는 게 일류다.
어쨌든 하다 하다 기운이 빠져 남편과 넷볼 코트를 구경하러 돌아다녔다. 그때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얼굴의 여자아이가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작은 백인 아기의 손을 잡고 살짝 구부정한 채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집에서 쉬게 하지. 자기 딸 경기한다고 저 유학생을 데리고 왔나 보네. 혼자 집에서 쉴 수도 없고, 안타까워라.
우리의 시선은 곧 그 아이를 따라갔고, 우리의 발걸음은 그 아이를 향해 뒤따라갔다.
역시나, 맞았다. 아시안 아이는 쉴 틈 없이 호스트의 자녀를 케어하느라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집에 가고 싶은 표정이다. 부모와 함께였더라면 안타까웠다. 학교에서 하는 스포츠다 마찬가지다. 부모가 함께 오지 않는다면 학교 스포츠를 하기가 어렵다. 운 좋게 호스트가 해준다면 모를까? 유학원에서 해준다면 모를까? 하고 싶은 학교 스포츠를 마음껏 하기 어렵다. 어쨌든 아이의 딱한 처지가 보여 딸의 젤리를 사며 하나 더 사서 슬쩍 건네주었다. 유학을 와서는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유학을 와서 더 아이들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다독여야 하고, 아이가 잘못 생각하는 부분은 제대로 알려 줘야 하고, 가르칠 것도 많고, 할 일도 많다. 한국보다 할 일이 더 많다. 신경을 더 써야 한다. 매일이 소리 없는 긴장과 싸운다.
아파서 학교를 오늘도 쉬는 리나는 기분이 좋다. 컨디션은 나쁠지언정 기분은 해피하다.
학교를 못 가서 슬픈 것보다 학교를 안 가서 즐겁다.
하지만 밤새 앓은 기침으로 오늘 아침은 기운이 없다. 입맛도 없단다. 그래도 유튜브는 보고 싶단다. 누워서 유튜브를 볼 수 있게 리나 방에 있는 흰색의 작은 의자를 침대 위에 올려두고 그 위에 갤럭시 패드를 놓아주었다. 리나의 방에 있는 작은 테이블은 최대 8살까지 사용할 수 있다. 타우랑가에는 다이소 같은 마트가 있다. 케이마트, 웨어하우스다. 그 마트에는 저렴한 조립 가구도 구매할 수 있다. 품질은 좋지 않다. 가격은 합리적이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1년 렌트 계약서를 쓰고 리나의 방을 꾸며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테무도 보고, 중고 샵도 다니고, 온라인으로 검색도 하고, 남편과 마트도 다니다 마음에 드는 키즈 가구를 발견했다. 그날 당장 구매하여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곧장 조립을 했다. 하얀 컬러의 작은 의자 2개와 둥근 테이블. 작고 아담한 가구는 살짝 리나에게 작아 보였다. 그래도 리나의 방 한쪽을 완성 하기에는 적당한 가구다. 그 작은 의자는 침대 위에 올려 두고 패드 받침으로 쓰기에도 적절하다.
누워서 유튜브를 보던 리나는 한국식 양념 통닭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우버이츠에 한국식 양념통닭이 배달이 된다. 배달료가 사악하다. 한국의 배민 저리 가다. 배달료가 무려 7불이 넘고, 우버이츠 어플 사용료가 3불이 넘는다. 합이 10불이 넘어 11불 정도다. 그래도 시티까지 사러 가기는 힘들고. 남편도 머리가 지끈 거린다고 해서 두 눈 질끈 감고 주문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국이라면 나는 리나가 아무리 아파서 결석을 해도 친구들과의 학습량이 벌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텐데 지금은 그런 두려움이 없다. 걱정도 되지 않는다.
알아 가야만 하는 세상에 대한 긴장은 있으나 선행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 유학은 어렵고, 영어는 쉽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언젠가 반드시 완벽해지는 날은 온다.
지금 나는 뉴질랜드에서 내려놓은 법을 배우는 중이고 오늘은 내려놓는 법을 실천하는 중이다.
병원은 또 가야 하는 걸까? 고민이다. 병원에서 만난 의사2명은 Ali right. Just virus.라고만 한다. 이럴때는 자연이고 나발이고 한국으로 가고 싶다. 긴 감기로 속타는 부모 마음을 알리 없는 나의 어린 딸, 리나는 입가 양쪽에 붉은 소스를 묻혀가며 맛있게 양념 통닭을 먹고 있다. 리나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니 감기를 잘 익 내고 있어 대견하다. 하지만 기침과 구토를 또 하게 되면 내일은 다른 병원의 다른 GP를 만나러 가봐야 겠다.
이것이 진정한 의료 쇼핑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