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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머피와 핸들링이 되는 참새가 사는 나 집.

기나긴 겨울 방학 동안 홀로 한국을 다녀왔다. 앞서 언급하였듯 나는 암환자다. 착한 암이라고 부르는 갑상선암이다. 처음 목이 쉬어터졌을 때, 나는 동네에 위치한 이비인후과에 갔다. 당시 돌팔이 이비인후과 의사의 진료 덕분에 독감, 감기약을 먹어야만 했다. 지나고 보니 나처럼 쉰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독감 혹은 감기라고 진단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목소리신경까지 암세포가 영역을 확장한 탓에 목소리를 거의 잃기 일보직전이었다. 희한하게 이물감이나 겉으로 보이거나 사례가 걸리지도 않았다. 내가 느끼지 못했다. 다만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서울의 유명의사들은 대기가 길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의사는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 않고 수술 준비가 되면 해당 부분 수술하고 나머지는 다른 의사들이 마무리한다 하여 서울에서 수술받기는 꺼려졌다. 게다가 그들은 한결같이 목신경은 못 살린다고들 했다. 암세포가 50퍼센트 이상 침습하여 수술이 어렵다고도 했다. 어쨌든 그들은 손 많이 가지 않으면서 치료 성공 사례에 쉽게 꼽을 수 있는 환자를 선호하는 듯 보였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었는데, 나는 목소리를 잃고 생명 연장을 얻는 걸까? 절망스러웠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니...

더 이상 누군가와 다퉈야 할 때 화악 달려들어 들이받을 수 없다니...

더 이상 내가 나의 딸을 위해 책을 읽어 줄 수 없다니...

더 이상 내가 나의 딸 공부를 시킬 수 없다니...

더 이상 내가 나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니...


"하아. 아주 많이 몹시 매우 괴롭도다..............."


그리고 나는 부산으로 돌아와 개금 백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선택은 쉬웠다. 확신에 찬 의사 선생님의 말과 태도 때문이었다.


"내가 할게요. 나이도 젊은데 목소리 살려야지. 하면 되지. 수술합시다."


간단명료한 의사의 말에 나는 수술을 받았고, 목소리도 살렸고, 암도 치료했다. 그리고 지금은 조잘조잘 나불거리는 아줌마가 되어 뉴질랜드에서 살아가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아야 해서 일주일간 한국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돌아온 날 집문을 열자 제일 먼저 반겨 준 이는 이웃집 머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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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머피~~. 너는 아직도 안 갔구나?"


일주일간 나를 보지 못해서 그런 걸까? 유난히 머피가 엉덩이를 내 다리에 갖다 대려 애썼다. 그리고 지극한 눈빛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런 머피가 귀여워 나도 계속 머피의 눈을 바라보았다.


"누가 누가 이기나? 이 눈싸움의 승자는 누군가?"


머피의 눈동자는 오묘한 오팔 같은 빛이 난다. 나는 오팔을 좋아한다. 그 오묘한 색감과 유색 보석의 가격을 사랑한다. 머피는 한참을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머피, 너 무슨 생각하냐?"


나는 물었다.


"야옹."


머피가 대답을 했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벌러덩 나의 발 아래쪽에 드러누웠다. 그러더니 또 한참을 그렁그렁하며 나뭇잎이 알알이 박힌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기분이 몹시 좋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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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피의 엉뚱한 듯 발랄한 그 모습이 귀여워 습식 사료를 꺼내어 밥그릇에 부어 주었다. 그 순간 머피는 벌떡 일어나 총총총 빠른 걸음으로 밥그릇을 향해 뛰어왔다. 와구와구 먹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러더니 캣도어를 향해 집 밖을 나갔다.


"엄마, 머피가 밥 먹고 똥 싸러 가나 봐."


나의 딸이 말했다. 2개의 큰 캐리어 가득 나의 딸을 위한 사탕, 초콜릿, 젤리를 사 왔다. 나의 딸은 한국 편의점에서 사 온 각종 간식들을 하나씩 맛보는 재미로 잔뜩 신이 나있었다. 그 사이 나는 잠시 방에 갔었는데 나의 딸과 남편이 다급히 머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머피. 안돼. 하지 마. 물총 찾아와. 물총."

"아빠. 물총 물총 쏴. 그거 어딨 어?"


밖에 나와 보니 머피가 새를 물고 있었다.


"머피. 뱉어. 하지 마."


나도 외쳤다. 하지만 머피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를 물고 거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새를 문채로 다시 캣도어로 나가버렸다. 그 사이 우리는 물총을 찾아 물을 채웠고, 집 밖으로 나갔다. 머피는 우리를 피해 앞마당 문을 뛰어넘어 마당으로 가버렸다. 우리도 얼른 쫓아갔다. 물총을 두들겨 맞은 머피는 새를 뱉어 버리고 잔뜩 젖은 채로 집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우리는 새를 찾아 아보카도 나무 아래를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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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새가 펜스 사이에 있어. 나무 안쪽에."


자세히 보니 작은 참새가 잔뜩 겁에 질린 채 펜스 사이에 있었다. 나의 딸이 장갑을 끼고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새를 구했다. 지난번의 일이 떠올라 이번에는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이번에는 우리가 잘 살려 보자. 또 죽으면 안 되잖아."


나의 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진료를 받고 뉴질랜드로 돌아온 날 머피는 새를 물고 왔다. 그렇게 시작된 참새 간병일기가 시작되었다. 참새는 좀 다치긴 한 것 같았다. 지난번 참새는 다리와 날개가 부러져 심하게 다쳤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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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부러진 곳은 없다. 너는 살 수 있겠다.


지난번 일을 교훈으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일단 설탕물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어린이 약통에 설탕물을 넣어 참새 부리에 맺히게 조금씩 물을 묻혀 줬다. 참새는 곧잘 받아먹었다. 그리고 조금 진정되는 시간을 거친 후, 약 30분 후다. 나의 남편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새를 살폈다.

새 가슴 중앙, 왼쪽 날개 안쪽, 등 쪽이 털이 뜯겨 나가며 생긴 상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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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편은 신속하게 화장솜에 흠뻑 적신 빨간약( 요오드)을 상처 난 이곳저곳에 발라주었다. 일단 새가 작고 충격받았을 것 같아서 한번 할 때 충분히 소독을 하기 위해 상처 난 곳에 흠뻑 흠뻑 적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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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새는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우리는 설탕무를 먹였고, 뒷마당에 열린 포도를 따와 포도즙을 주었다. 또 잘게 자른 식빵과 마당에서 따온 블루베리도 함께 밥그릇에 두었다. 마당에서 잡은 거미도 몇 마리 두었다. 그런데 밥은 잘 안 먹는 것 같았다.


"어쩌지? 밥을 잘 안 먹어."


내가 말하자 나의 딸이 대답했다.


"엄마, 그러면 아기 음식은 어때? 아기들 짜 먹는 파우치 요구르트 같은 거 마트에 팔잖아."


역시!! 너는 의사 딸이 맞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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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은 당장 차를 타고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2가지 맛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린이 약통에 조금 넣어 참새에게 주었는데 참새가 잘 먹는다.


그렇게 참새는 3일째 집에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름을 지었다.


"참 삐순."


너의 이름은 참삐순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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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가 나를 위해 선물을 준 걸까? 맨날 잠만 자고 밥만 먹고, 멍만 때리는 것 같지만 머피도 다 생각이 있나 보다. 어쨌든 머피 덕에 새로운 동물 가족이 생겼다. 잘 치료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그날까지 돌봐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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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기한 건 참새가 핸들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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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머피와 핸들링이 되는 참새가 사는 행복한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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