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중에 남은 돈 250만원 남짓. 돈 계산을 해보니 앞으로 2~3달정도밖에 버티지 못한다. 그럼 최소 1~2달 안에는 취업을 해야한다는 뜻.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 오랜만에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불안감이 갓 눈 비비고 잠에서 깬 나를 덮쳤다.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아 사람인을 열심히 뒤진다. 나를 원하는 곳은 없고, 내가 원하는 곳도 많지 않다. 그 간극만큼 내 불안감은 깊어진다.
여느때처럼 친구와 디엠으로 신세한탄을 하며 애써 취업난 핑계를 대던 중, 친구가 도움이 될만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해보라는 말을 해줬다. 그런 마음은 항상 막연하게 있었지만, 품을 많이 들이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점, 마땅한 소재가 없다는 점이 걸려 시도는 못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아무말이나 하는 대나무숲 같은 계정은 어떨까?" 나는 사람들의 터무니 없는 이야기나 맥락없는 무지성 공감과 위로, 때로는 냉철하고 현실적인 정보의 공유, 사사로운 일상 속 얻는 행복감 등을 주고받는 걸 참 좋아했다. 돌이켜보니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더라. 고된 사회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입 밖으로(요즘은 타자로라도) 꺼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때로는 그 사이에 전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한 때 대나무숲이 인기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 아닐까?
무튼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주변에 재미난 생각이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보이는 친구들에게 하나둘 연락했다. "당신의 뇌에 부유하고 있는 여러 생각주머니를 열어서 제게 보여주세요. 날 것이어도 상관없어요. 정돈은 제가 할테니 꺼내보세요." 라고. 상담소.. 우편함.. 대나무숲.. 한 단어로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어느정도의 감이 온다. 누군가 계정 운영의 최종 목표에 대해 묻는다면 "just fun!"이라고 답하고 싶지만, sns의 긍정적 기능 중 하나인 "공감과 위로"라는 가치 있는 단어로 포장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샘솟고 하고 싶은게 생겨버리니 깊어지던 불안감은 점차 옅어지다 못해 제 차례를 기다리던 낙천성이 뿅하고 등장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돈이 필요하다면 알바라도 하지 뭐! 라며. 아, 내가 불안했던 건 취업을 못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라며.
퇴사 후 몇개월 간 쉼과 구직을 동시에 하면서 내가 그리던 목표와 이상향이 흐려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잠자고 있던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지개를 켠다. 그냥 영원히 잠들어있어주면 안되겠니? 라고 투덜대보지만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평생을 변모해가는 그 친구를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죽을 때까지 강구해야겠지.
무튼, 자기소개서에 추진력 하나만큼은 자신있다고 적어둔 나로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 해보려고 한다. 30살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흠이 되는 세상인가? 그럼 어떤가, 그 행위에는 당당한 이유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