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마주하다

늘 그렇다. 예상과 다른 현실들. 상상할 수 없는 내일들

by 장시무


파스타가 그렇게 싫어진 어느 날, 통장 잔고 확인.

갑자기 식은땀이 흐른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한국에서 연체된 카드값 고지서가 날아왔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 공포가 밀려온다. 통장 잔고 500불 확인.

정신 차려, 여긴 호주야.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일생 처음 겪는 이별의 아픔이 일생 처음 겪는 해외살이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누가 보면 한가하게 뒹굴뒹굴이지만, 실제로는 괴롭게 뒹굴뒹굴 이었다.


쓰라린 마음을 뒤로하고, 정신 차려를 속으로 몇 번을 외쳐본다. 괴로움을 잊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은 내 사전에 없었다.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 면상을 나중에라도 꼭 보고 싶었다. 그래, 나 없이 잘 사나 보자! 이런 마음이랄까?


단순해지자. 지금 나는 돈이 없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럼 나가야 한다. 일을 찾아야 한다. 근데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호주 오기 전에 하우스청소, 식당 설거지등을 추천받았고(이걸 하라고?) 영어가 안되기에 한국인과 함께 하는 일을 구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선배가 알려준 호주나라 웹사이트에 접속, 구인구직란, 클릭 내려본다. 시급 8~9불, 한국돈이면 7천 원 이상이네 괜찮네! 하다가도 여기 물가를 생각하니 어 어중간한데? 아니야,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이것저것 보니 맘에 드는 게 있을 리가.. 청소는 하기 싫고, 설거지도 영 … 하나가 눈에 띈다. 초밥집 알바? 오케이~ 장소도 시티라 괜찮겠다 싶었다. 약속을 잡고, 시간 맞춰 갔다.


점심시간을 준비하는지 분주했다. 홀은 정말 작았고, 직원은 2명이었다. 면접 보러 왔다고 하니, 마시던 김밥을 계속 마시면서, "트라이얼 이틀하고, 9불 시작해서 잘하면 10불 올려준다."끝. 그리고 계속 마신다. 잠시 멍하다. 나는 그저 입구에 서 있을 뿐이다. 나도 마시고 싶다. 목이 갑자기 타오르고, 현기증이 났다. 뭐지? 나는 이제 한국에서 온 지 한 달 좀 되었고, 일을 구하고 있는데, 내 이름은 무엇이며, 뭘 할 수 있고, 어떻게 일을 하고, 우리 가게의 특징은 이렇고 저렇고… 내 첫 면접은 말아 드셨다. 아니, 내가 거부했다. 무슨 저런 불편한 사장이라니.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워홀이 하도 많이 들어와서, 일자리는 적고, 사람은 많으니 몇몇 한국인 사장들은 그렇게 한국워홀들을 대한다나 어쩐다나…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아무리 내가 돈이 필요하고 직장을 주는 입장이라지만, 그렇게 사람을 대하나?


나는 아직 호주와 워홀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 때였다. 이후 몇 군대 더 갔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초밥은 좋아하지만, 초밥집 알바는 안 하기로 했다. 다시 호주나라 구인클릭.

불현듯, '직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해 사람이!' 하면서 글쓴이 아이디를 보게 되었다. 눈에 띄는 단어. ‘친구’


'그래 이런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라면 속이 따뜻한 사람일 거야.' 들어가 보자. 클릭.

직종: 타일 보조

일: 재밌게 일 배우실 분 모집합니다. 기술 없어도 괜찮습니다.

시급: 협의 후 결정

(뭐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면접 첫날, 중년의 아저씨였다. 키는 작고 얼굴은 검게 그슬렸지만, 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장인 본인과 둘이서 일을 하게 될 거라고, 보조만 해주면 된다고, 덩치가 커서 일 잘할 것 같다고 칭찬? 해주셨다. 재밌게 하자고, 그리고 내일 바로 출근하면 된다고…

사실, 타일일? 이 뭔지 몰랐다. 그냥 타일 붙이는 거? 막노동의 경험을 살려서 그 정도 힘들겠지 예상해 본다. 그래도 호준데 한국만 하겠어?


사실 돈이 필요했기에,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당장 출근한다고 했다. 일단, 초밥집보다는 시급이 살짝 높을 거라는 사장님의 말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 뭐든 일단 일해보자. 도전해 보자!

이제 정말 워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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