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

환상과 현실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

by 장시무

얼마를 달렸을까?

주택가를 지나 수풀을 지나고, 산인지 들판인지 한참을 차를 타고 달렸다. 아침으로 먹은 맥모닝이, 한국보다 두 배도 넘는 가격이라는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목적지에 이르렀다.

트렁크에 실린 짐들을 내린다. 한눈에 보이는 집이 아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집 건물이 있고, 건물을 둘러싼 넓은 잔디, 그리고 집 앞 수영장. 여기는 집인가, 호텔인가, 펜션인가? 어떤 사람이 살까?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빨리 내려'

정신이 번쩍 든다. 감동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장비를 내리고, 타일도 내리고, 가장 중요한, 밥솥도 내리고. 열심히 나른 후 오전 작업을 시작한다. 동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름은 끝나려면 아직인 것 같았다.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서 그런지 살짝 차가운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오늘은 이 집 수영장 작업이다. 수영장이 있는 집은 실제로 처음 본다. 촌놈이다.

아직은 초보라서 미숙, 실수 투성이다. 본드를 개는 것도, 장비를 가져다 드리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필요한 물품 이름을 외우는 것도, 뭐든 아직 배우는 중. 누가 처음부터 잘하는가? 사장님 말로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나는 아니란다. 괜찮다. 그런 말에 주눅 들 내가 아니다. 그런 사치를 부릴 쳐 지가 아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다. 사장님은 나름 이 직종에 배테랑인 것 같다. 숙련된 솜씨와, 엄청난 소통능력(영어는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 않지만, 소통이 안되지 않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셨다)을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여겨진다. 외국에서 이렇게 적응하시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 듣고 보니, 오신 지 좀 되셨고, 이 일을 하신 지도 오래되셨단다. 시드니 외곽에 집도 한 채가 있고, 거기에 어머니 모시고 자녀들과 산단다. 이상하다. 사모님 이야기를 안 하시네. 나도 눈치는 있다. 나이 30이다 되어 그 정도는 안다. 며칠 후에 우연히 들었지만, 헤어지신 지 몇 년 되셨단다. 호주생활하면서 좀 힘드신 시절이 있으셨다고. 그래, 인생이 참 다 있는 것처럼 보여도 다 그런 건 아니다. 이민 오면 다 잘 사는 줄 알았다. 다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나름대로 다들 사연이 있었다. 사장님과 일하면서 이민 사회의 여러 면들을 듣게 되었다. 물론 사장님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겠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아 '여기도 똑같구나'를 연신 되뇐다. 사람들은 해외이민생활에 대해서 환상이 있지 않는가! 나는 그때 알아챘다. 별것 없다는 것을. 물론 좋은 점도 많다.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한국보다 많고, 이런 노동일을 하더라도, 수입이 비교적 적지도 않고, 사회적 시선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은 수입도 영 시원찮고, 시선도 좋은 건 아니다. 근무 여건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호주에 도전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영장 한쪽 구석에 퍼즐을 완성해 간다. 그래, 퍼즐이다. 아주 작은 타일이었지만 비싼 타일이라고 한다. 내 눈에는 어릴 때 아버지와 다녔던 동네 목욕탕 타일과 별반 다를 바 없게 보이는데 말이다. 사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열심히 타일을 날라 드린다. 내 인생도 이렇게 퍼즐이 딱딱 맞춰지길 바라면서 열심히 나르고 또 나른다. 나는 아직 붙일 짬은 아니다.


"쉬었다 할까?"

(너무 좋죠!)


표정은 숨긴 채 슬쩍 힘든 척 땀을 닦으며 오른쪽 장갑부터 벗어본다.


"준비하자"


간식타임, 호주 사람들은 커피 혹은 싸 온 간식을 먹는 시간에 우리는 라면을 끓여 먹는다. 밥솥에 계란까지 풀어놓은 라면이 그렇게 맛있을 줄이야. 호주하늘 아래, 모르는 사람 수영장 공사현장에, 동양인 두 명이 라면 먹는 모습이란... 생각만 해도 이상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휘져어가며 후루룹 짭짭, 국물까지 깨끗하게 들이켠다. 해외생활에 라면이 없다면 너무 슬플 것이다. 그때 그 라면 맛, 잊을 수 없다. 그나마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10시쯤 간식타임, 12시 점심 그리고 2시쯤 다시 간식타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벌써 2시 30분이 조금 지났다.

그런데 저 멀리서 누가 인사를 한다. 수영장 옆에 잔디 쪽에서 돌담공사를 하던 호주 사람 들다.

Bye,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첫째는 그 어렵다던 호주 악센트를 내가 알아들었다는 것과, 둘째는, 지금 가는 거 맞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떠나가는 등에다가 어색하게 Bye를 외치고는 사장님 눈치를 살짝 본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붙이고 또 붙인다. 우리는 퇴근 5시, 그들은 2시 30분. 시작은 우리가 조금 더 일찍 하는데, 더 늦게 간다. 나중에 알았지만, 시급도 그들이 훨씬 높았다. 억울해도 늦었지만, 왜 그런지는 물어보지도 못했다.


왜 한국인들 퇴근 시간이 다를까?

내 짐작으로는 같은 가격으로는 경쟁할 수 없지 않았을까? 그러니, 더 저렴하게 공사 비용을 제시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같은 기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가격을 제시하고 더 빨리 하면, 주인도 좋고, 더 많이 일할 수 있으니 좋은 셈이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많이 일하지만 수입은 적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찾아 주니까... 이 공사판에 경쟁력을 가지려면 같은 값, 빠른 시공! 그것밖에 답이 없지 않은가.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 호주사회 속에 또 다른 한인사회가 있는 거니까. 그들도 이렇게 고생하셔서 이 땅에서 자리를 서서히 잡아 오셨으니까.


'빨리 줘 뭐 하냐'


사장님은 괜히 사장이 아니다. 직원이 딴생각을 하는 그 순간을 정확히 캐치하신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타일일, 호주사회, 그리고 사장님을 알아갔다.

몸은 힘들지만, 서서히 적응해 가는 나를 보면서 대견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내일이 펼쳐질까 궁금하기도 하다. 환상과 현실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지만, 그 차이만큼 지루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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