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5일

2019년 12월 25일

“오빠, 회사 더 못 다니겠어, 그만두고 싶어.”


와이프의 갑작스런 한마디. 고민이 시작되었다. 누군들 회사를 다니고 싶겠는가? 집에 가만히 앉아서도 먹고 살 방편이 있다면… 회사를 다니면서 시간에 쫓겨 다닐 일도 없고, 저녁 먹고 야근을 하고, 야근이 끝나면 술을 먹고… 밤 늦게 택시 타고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새벽에 속 쓰려서 일어날 일도 없겠지. 대개 누구나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을 거다. 게다가 아내는 그야말로 주경야독, 낮에는 회사서 일하고, 평일 저녁시간과 주말 시간을 쪼개어 대학원을 다녔다. 논문을 준비하던 수 개월 동안은 새벽에 동이 틀 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일도 많았다. 게다가 그 공부는 전적으로 지금 하고 있던 회사 일을 더 잘하긴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면….그야말로 진심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그래, 그만 두자. 세상에 힘들어 죽을 만큼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할 만큼 중요한 일은 없어, 근데, 회사 그만두고 하고 싶은 거 있어?” (아차~~, 하고 싶은 걸 물어보는게 아니었다.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호프집이라도 하지 뭐”


“으응~~?? 호프집?”


“응, 호프집, 아니면 반찬가게라도 좋고…내가 요리 잘 하잖아. 뭐라도 내가 잘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좋겠어, 알아봐 줘~”


“어~~어~~그래 한번 알아보자.”


그날부터 집에서 가까운 곳 일대에 매물로 나와 있는 주점을 알아보러 다녔다. 아내가 알아보라고 했으니 일단 찾아야 했다. 집에서 가까운 큰 상권인 구로디지털단지역 상권에 칵테일 바 하나와 맥주집 하나가 매물로 나와 있었다. 유명한 깔깔거리 상권이라는 곳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에서 2번 출구와 3번 출구까지 도림천 남측으로 형성되어 있는 유명한 상권이다. 신대방역에서 석수역까지 이어지는 시흥대로와 경수산업대로를 통해 안양, 군포, 의왕과 시흥을 비롯해, 서수원까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며 배후지로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1단지)를 두고 있는 곳이다.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는 과거 대한민국 공업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곳인데 이후 서울이 외곽으로 확장되면서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공장 지대가 되어 슬럼화 되었다가 아파트형공장, 요즘 말로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서면서 수많은 기업이 입주하여 직장인 밀집 지역을 형성한 곳이다. 다음 지도의 박스 안이 해당 상권이고 그 좌측으로 보이는 곳이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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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지가 탄탄해서 어려워진 경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가 권리금이 꾸준하게 형성되고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상권으로서 괜찮은 곳이었다.


하지만… 괜찮은 곳인 점이 문제였다. 권리금과 함께 상가 보증금까지 거액이 투입되어야 했다. 게다가 우린 장사라는 걸 해보지 않았다. 상권을 분석 하고, 그로부터 비롯된 땅값의 상승 여력을 판단하는 일을 하는게 내가 은행에서 12년(2019년 기준)동안 해온 일이었지만, 직접 임차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아내가 사장이 되는 것을 전제로 예산을 짜고 사업계획을 세워봤다. ‘장사가 잘 될 만한 곳인가’도 중요했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자금으로 가능한 것인가가 더 문제였다. 권리금과 보증금, 이후 가게를 유지 운영하는 비용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것으로 판단되었다. 게다가 은퇴도 하기 전에 맥줏집 사장(사실 사장은 아내이고, 나는 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계속 회사를 다니겠지만)이 되게 생겼으니… 하지만 아내가 원하는 일이니 일단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래서 가게를 알아보고 예산을 짜보는 한편으로 다른 대안을 같이 찾았다. 그리고 넌지시 아내에게 얘기했다.


“자기가 사장을 하고 싶은 거지, 주점 사장을 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 그럼 주점보다는 카페가 어때?”


“카페?”


“응, 카페!”


하늘이 도왔다. 와이프는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잘 하기도 했지만, 커피도 역시 좋아했다. 아내는 커피에 관심이 많아서 신혼 초부터 우리 집에는 가스레인지로 끓이는 ‘모카포트’ 가 있었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여전히 집 장식장에는 ‘모카포트’가 모셔져 있다. 그 후 이사를 하면서 네스프레소(이후에 나오는 수 많은 브랜드 또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앞 광고도 뒷 광고도 아님을 밝혀둔다. 하긴 애초에 광고가 들어올 만큼의 파급적이 있는 글도 아니니…공연한 걱정이긴 하지만…)의 캡슐커피 머신으로 업그레이드 했고, 다시 이사를 하면서는 드롱기 수동 머신과 원두 그라인더로 업그레이드했었다. 그리고 다시 또 이사를 하면서는 브레빌 반자동 커피 머신을 소형 중고차 한대 값으로 해외에서 직구도 했다. 반자동 머신의 경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비싸기는 하지만’ 아주 좋은 아이템이었다. 사놓고 보니 결과적으로 커피를 밖에서 사 먹는 비용을 감안하면 비싼 커피머신 값은 빠지고도 남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고정비(=머신구입비)가 발생한 다음 변동비(커피원두+컵)는 작기 때문에 손님에게 대접하고 주변에 커피를 나눔하는 것도 용이했다. 나중 일이지만 집을 지을 때 각 단계별로 수고해주시는 분들께도 커피머신이 큰 역할을 했다.


“카페가 주점보다 더 간단 하기도 하고, 게다가 카페를 할 것 같으면, 꼭 권리금 있는 곳에서 위험부담을 안고 할 필요 없이…우리가 직접 저렴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1층엔 카페도 할 수 있어.”

“흠~~카페라, 그럼 상가주택을 짓자고? 그게 가능할까?”


이때까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장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야말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해 말부터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19가 대유행하면서 자영업 특히 주점과 식당은 큰 타격을 입었다. 가게 대신 집 짓기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천만다행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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