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청소하기
볕이 따스하고도 샅샅이 나에게 닿는 어느 귀한 하루다.
이런 날에는 영혼 대청소를 한다. 미뤄두었던 머리를 하고, 기분 좋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과, 세상의 난잡한 모든 일들에 아무렴 상관없어 보이는 구름의 잔잔한 움직임을 보기 위해 땅이 아닌 하늘을 몇 초간 바라본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면 내가 아직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를 발견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한순간의 바람을 느껴보기 위해, 여기저기 제 노력을 다해 피고 지는 꽃들과 나뭇잎들을 보기 위해.
조명이 은근한 어느 작은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19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잔잔한 영화를 마저 보고, 책을 한 권 집어 든다. 그 사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한 움큼씩 가지고는 카페에 들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료를 주문한다. 사장님의 커피 가는 소리와 그 향은 언제 들어도, 언제 맡아도 나의 복잡한 머릿속에 디퓨저가 되어 퍼져나간다. 엉켜있는 사적인 일들, 공적인 일들에 대한 생각들을 일시 정지시켜 저 아래 덮어두고, 지금 눈앞의 글자와 사장님의 마음이 거품처럼 담긴 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불어오는 바람에 촉감을 기울인다. 기타 소리가 선명한 옛 팝송을 들으며 마저 영혼의 얼룩들을 닦아낸다.
그렇게 얼마간 있다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다. 소중하게 마련한 조그마한 카메라를 하나 손에 들고는, 내 눈 속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꽃들을, 자신만의 힘으로 피어나고 있는 무수한 잎과 나무들을, 저 수많은 건물 속에는 어떠한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셔터를 조심스럽게 누른다. 사진으로 보는 그 장면과 내가 실제로 보고 있는 이 장면이 주는 감정은 서로 조금 다르지만,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나의 치료제가 된다.
나의 혼과 정신을 조금 비워냈다는 느낌이 들면, 이제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나 의례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서로가 버티고 있었던 짐들을 살짝씩 들려주고, 듣는다. 그 짐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서로가 함께 연결되어 있는 추억으로 치유의 그림을 함께 그린다.
이렇게 대청소를 하루의 끝에 마무리한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마다의 하루를 마친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에 몸을 맡기며 오늘의 대청소에 대해 곱씹고는 먼지 한 톨까지 탈탈 털어낸다. 따스한 침대에 몸을 던지고서야 비로소 정화가 끝이 난다. 또 일주일간의 삶을 버텨내어야 하기에 이 청소는 매우 중요하고 또 소중하다. 끊임없이 내 자신의 머릿속 생각과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혼에 겹겹이 먼지가 쌓여 어디서부터 청소해야 하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던 지난날이 또 부닥쳐올 것이다.
주변 소중한 친구들과 지인들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따사로운 햇살이, 자연스레 흐르며 수많은 볕을 반짝이는 한강의 물결이, 딱 맞는 온도로 불어와 얼굴을 부드럽게 휘감는 바람이, 좋아하는 90년대 어쿠스틱 팝 노래가 그렇게 혼의 구석구석을 청소해 주면, 나는 눅진해진 새 마음으로 또 다음날을 맞닥뜨릴, 일주일을 버텨낼 조금의 힘을 정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