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서커스 물

by 전운경

물의 탄생


H₂O, 바로 물의 분자식이다. 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소와 산소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언제, 어디서 왔을까?

수소는 빅뱅 이후 우주가 약 38만 년 동안 식으면서 탄생했다. 빅뱅 직후 우주는 매우 뜨거운 플라즈마 상태여서 원자핵과 전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우주의 온도가 약 3000K(약 2726℃)까지 낮아지자, 비로소 수소 원자핵이 전자를 붙잡아 지금의 안정적인 수소 원자가 될 수 있었다.


산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산소는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과정을 통해 생성된다. 별은 그 엄청난 중력으로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는 핵융합을 시작하고, 별의 질량이 충분히 크다면 중심부의 온도와 압력이 더욱 높아져 헬륨이 탄소로, 그리고 다시 산소로 변환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별들이 생을 마감하며 우주 공간으로 퍼뜨린 원소들이 모여 새로운 별과 행성을 만들고, 결국 물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별의 탄생과 소멸 과정은 물의 재료를 준비하는 긴 여정이다. 별의 수명이 다하면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때 별의 내부에서 생성된 산소(O)와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H) 같은 원소들이 강력한 에너지와 함께 우주 공간으로 흩뿌려진다.

이후, 우주가 점차 식으면서, 전자가 하나인 수소 원자는 안정해지기 위해 다른 원자와 전자를 공유하려 하고, 최외각 전자 6개를 가진 산소 원자는 2개의 전자를 더 공유해야 안정해진다. 이렇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수소와 산소 원자들이 만나 화학 결합을 형성하며 물(H₂O) 분자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은 빅뱅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성간운과 같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친 놀라운 과정을 거쳐 탄생한 물을 우리는 지금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이 귀한 혜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요술쟁이 물


물이 생겨난 과정도 그렇지만 물이 가진 성질 또한 변화무쌍하다. 이 물이 손오공인 양 여러 형태를 바꾸는데 기체가 되기도 하고 고체로 변신하는가 하면 다시 액체로 둔갑하는 요술을 부리는 것이다. 승화는 물이 고체에서 바로 기체로 둔갑하는 과정이다. 한 겨울에 빨래가 서서히 마르거나 영하권에서도 내린 눈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은 고체에서 기체로 변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기체에서 다시 고체로 변신하는 예로 가을·겨울 아침에 풀잎이나 자동차 유리에 생기는 하얀 얼음 결정이 생기는 승화의 역작용을 관찰할 수 있다. 이밖에도 물이 얼어 얼음이 되니 액체에서 고체로 된 것이요 바닷물이 수증기가 되어 오르는 것은 곧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이다. 물이 생겨난 과정도 경이롭거니와 그 모습을 달리 자유롭게 변신하는 물은 더욱 흥미를 돋운다.





물의 순환


물(H₂O)은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그 형태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지금 내가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은 약 40억 년 전의 물일 수도 있고, 고구려 장수왕이 전쟁터에서 마신 물일 수도 있다. 바닷물은 해류를 따라 전 지구를 순환하다 수백~수천 년에 걸쳐 비가 되고, 강이 되고, 지하수가 되고, 정수 과정을 거쳐 식탁 위의 내 컵으로 와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물은 하늘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육지와 지하에서, 심지어 내 몸 안에서 자유롭게 주유하며 일생을 보낸다. 사라의 몸 70%가 물이라고 하니 결국 언젠가 물이 되어 세상을 마음껏 주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생각이 스친다. 사람의 몸은 화장 과정(약 800~1,000℃)에서 이 물은 즉시 수증기로 증발하여 폐와 피부에 있던 물, 세포 속의 물까지 모두 기체가 된다. 그 수증기는 대기로 퍼지고 식으면 구름이나 비, 눈, 이슬로 형태를 바꾸어 순환한다.


지구에 도착한 물은 자연계를 순환하며 강과 바다 그리고 지하 깊숙이 순환한다. 강가에서는 위대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다. 물의 힘이었다. 물은 뛰어난 용매작용으로 암석 속 광물과 원소를 녹여 이동시키고, 그 과정에서 토양을 만들고 산과 계곡의 윤곽을 다듬었다. 빗물에 실려 온 용해 성분들은 바다에 축적되어 해수를 짜게 만들었고, 바다는 수많은 원소와 이온을 품은 거대한 화학 용액으로 변했다. 생명 또한 이 용매 작용 위에서 가능해졌다.




물싸움


물은 인간활동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환경과 생명활동에 작용한다. 지구 역사에는 생명종의 약 75% 이상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사라진 대규모 멸종이 다섯 차례 있었다. 이른바 오대멸종이다. 약 4억 4,300만 년 전에 엄청난 규모의 대 빙하기를 맞이한 지구의 해수면이 급격히 낮아졌다. 해수면의 하강은 어류의 서식지가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약 85%의 종이 멸종하였다. 바닷물이 낮아져도 재앙이었고 높아져도 재앙이었다. 성경에 비가 40일을 내려 땅 위의 모든 움직이는 것들이 멸절되었다. 물은 생명을 잉태하기도 하고 다시 거두어들이기도 한다. 바다의 해류는 지구의 구서구석을 돌며 기후와 환경을 지배한다. 지구의 적도에서는 어마어마한 수증기가 발생한다. 적도의 수증기는 지구의 열을 저장하고 이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컨베이어벨트’로, 비·바람·사막·태풍·생태계까지 지구 환경 전반을 조율한다.


물의 자원을 서로 이용하려다 보니 논에 물대기싸움인 물꼬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아전인수라는 말도 생겨났다. 고대로마의 수로 유적은 지금까지 주요 관광자원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물싸움은 논과 밭에서 도시와 도시에서 나라와 나라사이에서 끝없이 벌어져왔다. 기원전 3,000년 전세는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도시국가에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싸움으로 도시국가 간 전쟁과 조약 반복되었다. 중동의 요르단강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등 여러 국가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갠지스 강 수자원 분쟁도 진행 중이다. 중국은 인도와 브라마푸트라 강의 물줄기를 바꾸고자 갈등을 겪었다.




물에 감사하다


경이로운 물의 탄생은 실로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삶에 깊이 기여한다. 지구상의 모든 식물은 물이 필요하다. 애당초 바닷속에서 살던 이끼류가 약 4억 8천만 년 전에 육지로 상륙한 이래 바다의 물을 이용한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즉, 물이 없으면 광합성이 불가능하니 지구상의 푸른 녹색은 물에 힘입은 것이다. 때 식물이 번식하는데 물의 의존에 벗어나려고 종자를 개발하는 혁신을 이루기도 했지만 그 종자 역시 물이 필요한 광합성 없이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식물은 다양한 생물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먹이가 되어주는가 하면 온갖 생물의 번식과 성장에 도움을 준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식물이 마련하여 준 숲 속에서 자라나고 번성하였다. 물은 강을 중심으로 문명을 일으키게 한 원동력이요 생명, 기후, 지형, 생태계를 모두 연결하는 지구 시스템의 중심 역할을 한다. 우리는 식물에 감사해야 하고, 물의 고마움을 잊으면 안 된다. 거슬러 올라 수소와 산소에 감사해야 한다. 인간이 감사해야 하는 대상은 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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