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정답을 알지만, 나는 '나'를 선택한다
지난 월요일, 저희 독서 모임 '결갈피'가 세 번째 긴 호흡의 책이었던 '넥서스' 1부부터 3부까지의 여정을 드디어 마쳤습니다. AI가 인간의 삶 깊숙이 파고드는 가까운 미래를 그린 이 책은, 모임 내내 뜨거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AI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까?"
모든 의사결정을 AI에게 맡기면 가장 효율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은, 어쩌면 순진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이번 모임에서 저희의 생각을 관통한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최적의 선택이 아닌 걸 알고도 선택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AI가 제시하는 완벽한 정답 대신,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낭만'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독재는 빠르고 효율적(O(1))이지만, 민주주의는 느리고 비효율적(O(n))입니다."
책의 화두를 따라, 우리는 인간의 속도(Human Speed)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라는 낡은 OS가 빛의 속도로 결정하는 AI 시대에 유효할지 이야기했습니다. 당장 점심 메뉴 하나 정하는 데 30분이 걸리는 우리인데, 99%의 생존 확률을 보장하며 '지금 버튼을 누르라'는 AI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멤버들과 진행한 극단적 밸런스 게임은 저희의 고민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A. AI 독재자: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부유하고 평화로운 답을 1초 만에 내리지만, 내 의견은 개진 불가.
B. 인간 국회: 맨날 싸우고 1년이 걸리지만, 광화문에서 소리칠 자유는 100% 보장.
대부분의 멤버들은 비록 답답하고 비효율적이더라도, 소리칠 자유가 보장되는 B를 선택했습니다. 완벽한 효율성보다 절차적 정당성과 숙고의 가치를 아직은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약 뇌물도, 사정도, 실수도 없는 완벽한 AI 관료가 등장한다면 세상은 더 공정해집니까? 책은 "알고리즘에 '자비(Mercy)'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가?"라고 되묻습니다. 어쩌면 인간 관료제의 비효율과 빈틈이 우리가 숨 쉴 구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흥미롭게도 이 주제에서 많은 멤버들이 'A. 피도 눈물도 없는 AI 팀장'을 선택했습니다. 감정 소모와 불공정한 평가에 지친 현대인에게, 내 일을 정확하게 평가받고 싶은 욕구가 더 컸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예외나 사정도 없음'이라는 조건은 모두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내가 너무 아파 일을 할 수 없을 때조차 이 모든 것이 그저 차가운 평가 요소로 작용한다면? 이 딜레마 덕분에 토론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완벽한 공정함의 대가는 이토록 비인간적일 수 있었습니다.
"미래의 독재자는 고문실이 아니라 넷플릭스와 틱톡으로 우리를 통제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솔직히 지금 내 유튜브 추천 피드를 회사 스크린에 띄울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다들 웃음이 터졌습니다.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의 은밀한 욕망과 찌질한 취향을 더 잘 아는 것입니다.
과거 유행했던 '남자친구 인스타그램 탐색 탭 훔쳐보기' 릴스가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의 알고리즘이 무엇을 보여주는지로 그를 판단하는 시대입니다. 저희는 웃으면서 "나중엔 '알고리즘 세탁' 업체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 주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자유 연애 vs AI 매칭' 밸런스 게임이었습니다.
A. 자유 연애: 내가 직접 찾습니다 (단, 똥차 만날 확률 80%, 감정 소모 심함).
B. AI 매칭: 나와 99.9% 맞는 소울메이트를 배정합니다 (단, 거부권 없음).
선택은 '나에게 남은 연애 시간'에 따라 갈렸습니다. 빠른 안정을 원한다면 AI 매칭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 연애의 경험 자체를 소중히 여긴다면 자유 연애를 택했습니다. 한 멤버는 "AI가 완벽한 상대를 찾아주면, 맞춰가고 배워나가는 발전이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대화는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왔습니다. AI가 내 DNA와 뇌파를 분석해 99.9% 완벽한 소울메이트를 찾아준다고 해도, 우리는 왜 망설입니까? '똥차'를 만날 확률이 80%가 넘더라도, 내 감정을 소모하며 직접 부딪히는 '자유 연애'의 가치를 왜 버리지 못합니까?
그것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즐기고, 정답이 아닌 길을 선택하고, 결국 '내가 나를 선택'하는 그 과정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적의 답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후회할지라도, 그 모든 과정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그것이 AI는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낭만'이자 존엄이 아닐까 생각하며 긴 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결갈피'의 다음 책은 또 어떤 생각의 갈피를 남겨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