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라토너 거북 맘 May 06. 2023

소풍 같은 조깅

느끼고 즐기는 토요일 새벽 조깅

6월 말 경이나 7월 초쯤, 한국에서 한 여름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다.

초보자를 위한 성공적인 마라톤 풀코스 팁들을 검색하다 보니

한 달 훈련량이 최소한 300킬로가 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평소에도 꾸준한 체력단련을 위해

한 달 누적 거리 200킬로 이상은 여유 있게 달려오고 있었던지라

300킬로를 넘기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최소한 한 달에 300킬로를 채우려면

한 달, 30일 동안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10킬로를 달려야 가능한 거리인데

실상은 그게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았다.


달릴 때마다 늘 이용하는 러닝 어플에서

매월 초, 지난 한 달 동안의 훈련량이나 성과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서 보내주는데

아, 드디어 지난달 4월의 누적 거리가 300킬로를 넘어섰다!

이 벅찬 뿌듯함과 성취감은 달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동안, 새벽 4시 혹은 그보다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

평일엔 어김없이 10킬로씩, 주말엔 20~30 킬로 이상의 장거리를 달리며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아왔던 거리와 훈련들...

내겐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기록들이다.


비록, 대단한 기록은 아니지만

개미와 일벌 같은 부지런함과 변치 않는 꾸준함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결과임을 알기에

스스로 자부심과 흐뭇함을 느낀다.

4월 한 달간, 23일 동안 총 306 킬로미터를 달린 나를

스스로 무지하게 칭찬하고 격려해 본다.

'잘하고 있어, 그렇게만 계속 가자, 파이팅!'


2023년 5월 6일 토요일


조금은 릴랙스 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오후에 열릴 예정인 스타워즈 러닝 이벤에서 6킬로미터 레이스에 참가해야 하므로

오늘의 새벽 러닝 컨셉은 무리하지 않는,

소풍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조깅이다.


새벽 5시 30분쯤, 비치로드에 이어 사이판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또 하나의 산책과 조깅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 American Memorial Park에서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살살~ 달리기를 시작해 본다.

주변은 점점 밝아져 오는데, 못내 헤어짐이 아쉬운 듯 허연 얼굴의 달님이 하얏트 호텔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이 공원에는

바로 코 앞, 마나가하 섬으로 떠나는 배와 요트들이 모여있는 선착장도 있고

나무들이 무성한 숲 길 산책로와 캠핑 스폿, 언제 봐도 탄성을 자아내는 마이크로 비치와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특이한 3층 짜리 Peace Park가 있어서

원도한도 없이 시원한 바다를 눈에 담으며 안구정화를 하고

삼림욕까지 즐기면서 산책과 조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3층으로 이루어진 Peace Park


저 멀리, 나처럼 아침 조깅을 즐기는 또 한 명의 러너가 보인다.

아침 시간에 만나는 러너들은 웬만하면 서로 안면이 있거나 친한 사이라

지나쳐 갈 때마다 굿모닝 인사와 엄지 척은 필수이다.

굿모닝, 케이트!


공원 곳곳에는 어느새 '불꽃나무'라고 불리는 Flame tree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강렬하고 선명한 진홍색의 꽃들이 절정을 이루며 만개하는 이즘에는

사이판의 큰 행사들 중 하나인 Flame tree festival이 열려서 이곳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흥을 돋운다.

영원할 것 같던 다홍색의 꽃들이 지기 시작할 무렵엔

온 사이판의 언덕과 도로가 붉은 카펫을 깔아 놓은 듯 물들며 장관을 이룬다.


편안하게 즐기는 조깅.

페이스와 거리에 신경 쓰며, 죽자고 헉헉 거리면서 전투적으로 뛰어재끼는 게 아닌,

사방팔방 주변을 둘러보며 유람하듯 살살 달리다가

잠시 멈춰서 아름답고 멋진 풍경들을 감상하고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면서 놀멍쉬멍 즐기는...

내겐 가장 행복한 시간들 중 하나이다.


일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나 다소 언짢았던 일들이

어느새 바닷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아가고

차분한 마음으로 내일을 계획하며 엉켜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나만의 힐링 타임을 가질 수 있는 이 시간이

내겐 곧 최고의 보약이자 치료제가 되어준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조용한 이른 아침시간의 11킬로 조깅을 마친 후에는

역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옳다.

하루의 시작이 조깅이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기운찬 토요일 아침을 기쁘고 상쾌하게 맞이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갱년기와 달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