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라토너 거북 맘 Apr 04. 2024

삐냥이

날 두고 어딜 가냥?

"저기요, 206호인데요... 아무래도 우리 고양이들이 없어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집에 온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리 집안 곳곳을 찾아도 얘들이 없고요..."

"아마 청소하는 이모님들이 문 열어놓고 저희 집 청소해 주시는 동안 밖으로 나간 것 같아요, 어떡하죠?"

"이 녀석들, 밖으로 돌아다니던 애들이 아니라서 지금 엄청 무서울 텐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냥이들이 없어진 것 같다고 난리를 치자 관리실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아, 자 우선 좀 진정하시고요... 청소 아주머님들한테 확인했더니, 어제 청소하는 동안 스크린 도어를 확실히 닫아 둔 채로 일 하셨다고 하고요. 안 계시는 동안 매일같이 고양이 밥 주고 화장실 치워준 직원 말로는, 오늘 아침 206호에 들렀을 때  어제 주고 간 사료도 줄어들어 있었고 화장실에 볼 일 본 흔적도 있었다고 하니까 분명히 이 녀석들이 집안 어딘가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좀 더 찾아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관리실을 나왔다.

'도대체 어디 숨은 거니, 이 녀석들...'

두 냥이 녀석들을 놔두고 처음으로 온 가족이 장기 여행을 갔던 재작년의 이야기이다.

팬데믹 상황이 조금 누그러져서 부분적으로나마 해외여행이 재개되던 시기였고, 우리는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까지 함께 하는 제법 규모가 큰 3주 정도의 가족여행을 계획했었다.

 

관리실에 부탁해서, 체리와 베리, 두 냥이 녀석들의 케어를 미리 부탁해 두었고

우리가 돌아오는 날짜에 맞춰서 집안 청소 서비스도 신청했다. 혹시 냥이들이 놀라서 도망갈 것에 대비해서, 청소하는 동안 현관 스크린 도어를 꼭 닫아줄 것까지 신신당부했다.

처음엔 냥이들을 아는 집에 맡길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영역 동물인 냥이들에게는 오히려 낯선 장소가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듯싶어서, 차라리 우리 집으로 매일 방문해서 녀석들을 돌봐 줄 사람을 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긴 여행을 마치고 3주 후, 열정적으로 날 반겨 줄 녀석들을 상상하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한 걸음에 달려가 현관문을 열고 녀석들을 불렀지만...

나를 비롯한 딸내미들이 아무리 애타게 부르고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봐도 녀석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처음엔 어이없고 당황스럽기만 하다가, 슬슬 걱정이 되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집에 있다면 이렇게 까지 안 보일리가 없어. 이 녀석들, 분명히 지금 집에 없는 거야.'

집에 도착한 지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집 안에서 녀석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자 초조한 마음에,

관리실에 들러서 눈물 바람으로 하소연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순간, 체리 녀석이 아주 소심하고 조심스럽게 모습을 보였다.

"체리야, 이 눔의 자식아! 엄마 왔는데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와!"

그런데 이 녀석, 마치 낯선 사람 대하듯, 내게 다가올 듯 말 듯 망설이며 거리를 둔다... 하 진짜 섭섭하다 너...

누구... 세요?


어쨌든 체리 녀석도 드디어 모습을 보였는데, 아직 삼색이 베리가 보이질 않는다.

너무 하는 거 아니니 정말...

결국 베리 녀석은, 체리가 모습을 드러내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나온다는 듯 모습을 보였다.

원망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망울로 나를 노려보듯 하며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녀석...

"베리야! 엄마야! 엄마가 왔는데 왜 그래, 베리야! 엄마 안 보고 싶었어?"

반가움과 기쁨이 뒤섞인 마음에 녀석을 안아주려고 다가가자,

'미친 거야? 누가 맘대로 자리를 비우랬어? 그것도 이렇게 오랫동안... 이래도 되는 거야? 난 아직 화가 많이 나 있다고!'

녀석의 성난 눈빛은 완벽하게 음성 지원이 됐고 해석 가능했다.

어딜 싸돌아 다니다가 이제 오냥!


그렇게 어렵사리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은, 얼른 안아주고 싶은 집사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멀찌감치 떨어져서 나를 관찰하더니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쓰담쓰담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아니, 이렇게 어려워서야 원... 어디 집사 노릇 해 먹겠냐고...'

이제껏 여러 냥이들을 경험해 봤지만, 이렇게까지 겁 많고 낯 가리고 예민한 녀석들은 정말이지 처음이다.

집을 비운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에 들러서 밥도 주고 응가도 치워주고 화장실 모래도 채워 준 직원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하루에 두 번씩 들러서 밥을 주는데도 우리 냥이들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거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단다.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운다고 하니, 고양이 한 번 보고 싶다고 친구들이 집에 들렀을 때도, 꼭꼭 숨어서 절대 나오지 않다가 사람들이 돌아간 후 한참이 지나서야 녀석들만의 은신처에서 나올 정도이다.

덕분에 내 주변 사람들은, 집에 있는 캣타워나 냥이 화장실을 보고 고양이의 존재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

그 누구도 아직까지 우리 냥이들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 정말이지 대단한 녀석들이다.


"삐졌구먼! 고양이가 얼마나 잘 삐지는데~ 지들 놔두고 갔다고 삐진 거야."

처음 겪는 황당한 경험이라, 한국에 계신 친정 엄마와 통화하면서 이 얘길 했더니 바로 진단을 내려주신다.

미안하고 짠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온 식구들이 사라지고, 매일같이 쓰다듬어 주고 함께 뒹굴 거리던 엄마도 없고...

두 녀석이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웠을까...


그렇다고 일 년에 한 번,  좁아터진 섬구석 탈출을 할 수 있는 여름방학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두 딸내미를 무시하고 가족 여행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미국, 한국, 유럽, 캐나다 등... 석 달 가까운 길고 긴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콧바람도 쏘이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도 하는 섬 촌 닭들에게 여름 가족 여행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어렵다 어려워...

올해도 6월 초부터 8월까지... 아이들과 두 달 동안의 여행이 계획 돼 있는데...

무엇보다, 그 두 달 동안 우리 냥이 녀석들의 얼굴이 수시로 삼삼하게 떠오르고 그리워서, 녀석들 보다 내가 더 힘들 것 같아 걱정이다.

냥이가 곁에 없으면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냥이 중독자' 인지라, 여행 중, 녀석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보려고 일부러 캣카페까지 찾을 정도이지만...

그 많은 캣카페의 냥이들 중, 우리 체리와 베리만큼 예쁜 고양이는 없더라는...


"우리 삐냥이... 체리, 베리야!"

"엄마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고, 너무 많이 삐지진 말아 줘, 알았지?"

"엄마도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을 거야."


잘 삐지고 예민한 냥이를 모시는 집사에게는 여행도 사치입니다, 암요.

집사의 선물이 마음에 드는 삐냥이


매거진의 이전글 냥이는 꼬리로 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