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의 들꽃 이야기 - 봄, 첫 숨결을 따라 걷다

언 땅 뚫고 꽃망울 터뜨리는 세복수초

(좌) 변산바람꽃, (우) 세복수초


올겨울은 유난히 길다. 폭설이 휩쓸고 간 대지는 꽁꽁 얼어붙었고, 봄꽃들은 예년보다 열흘이나 늦게 깨어나려 한다. 겨울이 길어진 만큼, 봄을 향한 기다림도 길어진다.

들녘마다, 오름마다 무리 지어 피어날 봄꽃들을 떠올리며 기다린다. 그러나 꽃은 제때가 되어야 비로소 피어난다. 성급한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말한다. 기다림 속에서 인내를 배우라고.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어둠 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봄을 준비하는 시간. 그 긴 기다림 끝에, 눈이 녹기 시작할 즈음 꽃들은 조용히 꽃망울을 틔운다.


겨우내 쓸쓸하던 숲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간다. 새봄을 알리는 축복의 메시지. 복수초가 얼음장을 뚫고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을 지닌 꽃, 황금빛 미소로 숲을 환히 밝힌다. 그 여린 잎새에 깃든 힘이란, 차가운 얼음장마저 녹이는 따스한 사랑의 온기. 복수초의 미소에 눈도,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린다.

꽃이 없는 들녘은 음악이 없는 세상과 같다. 꽃이 있기에 제주의 오름은 더욱 아름답다. 힘겨운 발걸음마다 콧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 곁에서 자그마한 청옥빛 구슬이 반짝인다. 하늘을 품은 듯한 빛깔, 둥둥 떠가는 구름마저 담는다. 소엽맥문동의 열매다.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풀꽃, 그 보석 같은 열매가 숲의 고즈넉함을 담아낸다.

소엽맥문동 열매


그저‘들꽃’이라 불렀던 작은 존재들도 저마다 이름이 있음을. 하나둘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풀꽃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눈을 마주치며 속삭인다. “아름답구나.”이름을 부르며 그 꽃의 성질을 서서히 알게 된다.

그러나 아름답다고 해서 소유하려 해서는 안 된다. 꽃은 태어난 그 자리에서 자연과 함께할 때 가장 아름답다. 화단으로 옮겨 심으려 욕심내기보다는 씨앗을 조금씩 모아 심어야 한다. 욕심이 아닌 사랑으로, 자연이 허락한 방식으로 꽃을 피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야생화 사랑이다.


들꽃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후세들도 지천으로 피어난 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꽃처럼, 자연처럼 살아가기를. 후세들의 가슴속에도 들꽃처럼 순수한 아름다움이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