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저작권의 경계를 묻다
한라산을 오래도록 오르며 써온 글을 책으로 엮어보려 했다. 사계절의 풍경을 담은 만큼 ‘한라산의 사계’라는 제목이 떠올랐지만, 막내딸은 단호했다.
“너무 올드해.”
비발디의 ‘사계’도 있는데? 사계절을 담았다는 뜻인데? 고개를 갸우뚱하니, 딸은 AI가 추천한 제목 리스트를 보여줬다. 생소한 이름. ChatGPT?
앱을 설치한 나는 AI에게 물었다. “한라산의 사계절을 담은 서정적인 에세이 제목을 추천해 줘.”
놀랍게도 단 몇 초 만에, ‘한라산. 사계절의 숨결’, ‘사계절 한라산, 자연의 교향곡’, ‘제주의 계절을 노래하다’ 같은 제목들이 쏟아졌다. 정성스러운 제안에 놀랐지만, 딱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결국 AI의 제안과 내 생각, 딸의 의견을 조합해 <한라산이 그리는 풍경>이라는 제목이 탄생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전자책이 세상에 나왔고, 나는 처음으로 ChatGPT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후 ‘한라의 들꽃’을 주제로 또 다른 책을 준비하면서, 딸에게 내가 찍은 표지 사진을 보여줬다. 돌아온 말은 또 같았다.
“너무 올드해 보여. 꼭 사진이어야 해?”
이번엔 딸이 AI로 그림을 만들어 보여줬지만,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나는 내가 찍은 사진과 그림을 쓰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작권 때문이다. 요즘은 글씨체 하나, 이미지 하나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모든 창작물엔 창작자의 권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AI가 만든 콘텐츠도 저작권이 있나?”
ChatGPT는 답했다.
“제가 만든 결과물은 대부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하지만 작가처럼 사용하는 건 주의가 필요합니다. 참고자료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AI는 도구일 뿐이다. 요즘 AI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소설도 쓴다. 사람보다 더 창의적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엔 진짜 감정이 없다.
글을 쓴다는 건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삶의 경험과 감정, 고민과 통찰이 문장 속에 녹아 있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감정을 쓰지는 못한다.
물론 막힐 때는 AI의 도움이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모든 걸 AI에게 맡긴다면, 작가의 정체성은 어디에 남을까? 나는 믿는다.
잘 쓴 글보다, 진심이 담긴 글이 더 오래 남는다. 서툰 글이라도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그 과정에서 글은 빛이 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한 줄기 문장도 찬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창작이 가진 의미이자 가치다.
AI 시대에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