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청소년들 멘토가 되다

대정청소년수련관 인근은 학군이 탄탄하다. 초등학교만 4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2곳이 있으며, 조금만 벗어나면 국제학교도 4곳이나 자리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청소년 모집 여건이 좋은 편이다. 운이 좋으면 국제학교 청소년들과 함께 새로운 동아리를 꾸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어느 날, 국제학교에 다니는 10학년 청소년이 부모와 함께 수련관을 찾았다. 국제학교 학부모들이 수련관을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상담이다. 1956년 영국 에딘버러 공작이 만든 이 프로그램은 금·은·동장 단계별로 봉사, 자기계발, 신체단련, 탐험, 합숙 활동을 통해 청소년의 역량과 인성을 키우는 자기 성장 과정이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조금 달랐다. 그 청소년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했고, 나는 수련관에서 운영 중인 봉사동아리 참여를 권했다. 그런데 그는 단순한 봉사가 아닌 ‘지도 봉사’를 원했다.


안 그래도 학습동아리 운영 방식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전에는 또래끼리 공부하며 서로 지도하는 형태였지만, 시험기간에만 열기가 오르고 곧 시들해지곤 했다. 다문화가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1:1 멘토링도 시도했지만, 멘티들의 출석률이 낮아 이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내가 1년 반 동안 다른 기관에 근무하다 돌아온 터라, 동아리 활성화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 청소년의 제안은 좋은 계기가 됐다. 단 한 명으로 동아리를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친구를 데려오면 함께 시작할 수 있다고 권했다. 또 내가 알고 있던 다른 국제학교 학생에게도 연락했더니, 그는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고 친구까지 데려왔다. 그렇게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네 명이 되더니 마침내 8명의 멘토가 모였다. 이들은 10학년에서 11학년까지의 국제학교 학생들이었다.


‘국제학교 청소년들이 멘토로 나선다’라는 문구로 홍보하자 멘티도 금세 모집됐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멘티들이 참여했고, 매월 2회 진행된 1:1 맞춤형 수업은 큰 만족을 이끌어냈다. 학습동아리는 점점 활기를 띠었다.


특히 학습동아리 회장 준용이는 책임감이 남달랐다. 개인 태블릿과 학습자료까지 스스로 준비해 멘티를 지도했고, 이후 수련관에서 교재를 지원하면서 활동은 더욱 체계적으로 자리 잡았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멘토들이 본가로 돌아가 잠시 중단됐지만, 멘티들의 바람은 다음 해로 이어졌다. 봄학기가 되자 학습동아리는 다시 활기를 띠었고, 격주로 운영되면서도 그 어떤 동아리보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이어졌다.


준용이와 예원이가 책임감을 갖고 잘 이끌어준 덕분에 다음 해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멘티들이 많았다.


그 해, 학습동아리 회원들은 수련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나에게는 뿌듯함과 보람을 안겨준 소중한 청소년들이었다. 지금쯤 그들은 영국, 미국, 캐나다의 대학에서 각자의 꿈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그 꿈이 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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