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걸려오는 안부

“선생님~ 저 하민이에요.”

일 년에 두어 번, 잊을 만하면 전화벨이 울린다.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민이를 처음 만난 건 내가 문화의 집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했지만 자주 빠지곤 했고, 나는 자연스레 그녀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그러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하민이는 또다시 봉사동아리에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역시 발걸음은 뜸해졌다.


특별히 두터운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잊을 만하면 걸려오는 안부 전화 한 통이 나를 다시 그 시설로 데려간다.


하민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누가 대놓고 따돌리진 않았지만, 은근히 거리를 두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누가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굽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하민이가 좋았다. 바람에 흔들려도 꿋꿋이 뿌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단단해 보였다.


나를 기억하고, 내 번호를 눌러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대학교 1학년이 된 어느 날에도 하민이는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저 하민이에요. 저… 소설 쓰는 게 너무 힘들어요.”

문예창작학과 진학해 글을 쓰고 있다던 하민이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나는 서툰 조언을 건넸다.

“소설은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는 게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짧은 대화가 흘러간 뒤, 또 두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며칠 전에도 하민의 전화가 울렸다. 지난해 할아버지의 병환으로 휴학을 했지만,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고 했다. 방학이라 제주에 내려와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주었다.


“선생님~ 단편 소설 두 편밖에 못 썼어요.”

“와, 두 편이나 썼구나? 하민의 소설이 궁금한데.”

“부끄러워요. 과 친구들과 합평을 하는데,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어요.”

“잘했어, 하민아. 그렇게 부딪히며 글이 다듬어지는 거야.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어. 누구나 그 과정을 거치면서 빛을 찾는 거란다.”


나는 조심스레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써 보라고 권했다. 하민이는 "글을 쓰면 돈이 되냐"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돈이 되진 않아. 대신 실력 있는 문장가들이 많아서 ,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 빛이 나지 않을까?"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아직 자신이 없다"라고 했다. 괜찮다. 아직은 때가 아닐 뿐이다.


언젠가, 하민이의 이름으로 빛나는 글을 만나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울퉁불퉁한 자갈 같은 글들이 거센 파도에 깎이고 깎여, 매끄러운 몽돌처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숨결을 가진 소설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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