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리가 사랑한 섬의 노래

연화바위솔

탐험이란 고난과 묘한 즐거움이 동행한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그저 가까운 섬으로 향하는 길만으로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서귀포 앞바다에서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다가선 섬. 초가 마당으로 얼굴을 내민 섬은 아고리를 고방에서

바닷가로 이끌어냈는지도 모른다. 그 섬은 오래전부터 나를 불러왔다. 내 마음속 깊이 연화바위솔이 가득 피어 있었기에, 그저 한 송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떠나고 싶었다. 꽃이 피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그저 자생하는 연화바위솔을 보고 싶을 뿐.


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무인도, 비가 내릴 듯한 날이면 섬의 상봉을 감싸는 안개가 피어오른다고 한다. 우리는 통통배를 타고 푸른 바다를 가르며 무인도 탐험에 나섰다. 우뚝 솟은 한라산과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섬. 우리의 기대감도 점점 더 부풀어 갔다.

해국

푸른 바다를 가르던 통통배는 우리를 무인도에 내려주고 떠났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반기는 해국.

기암절벽 틈새마다 피어 있는 해국은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려 온 듯, 바람에 꽃잎을 나부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해국은 바다 너머 한라산을 바라보며 눈물같은 꽃잎으로 피어났다.

파초일엽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은 탐험대를 삼켜버린 듯 선뜻 우리를 풀어주지 않았다. 길은 사라지고 무작정 숲을 헤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각종 나무로 울창한 숲에는 흑진주를 단 나도생강이 반겨주는가 하면 맥문동아재비, 산호수, 이름 모를 고사리들이 어여쁘게 다가와 옷깃을 스친다. 어디쯤 올랐을까?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 길 위에서 뜻밖의 만난 파초일엽. 멸종위기에 처한 이 식물은 천연기념물 제18호로 지정돼 있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를 견디며 이 섬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파초일엽은 자생지에서조차 보기 어렵다. 초록빛 홑잎들은 뿌리줄기를 중심으로 부드럽게 뻗어 나와 원을 그렸고, 잎 뒷면에는 2차 맥을 따라 빗살무늬 같은 포자낭이 길게 자리하고 있다. 쉽게 볼 수 없는 파초일엽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길을 헤맨 것조차 행운이라 여겼다.

우리는 다시 연화바위솔을 찾아 섬의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나 섬은 온통 기암절벽. 발을 디딘 곳이 정상인지, 또 다른 절벽인지 알 수 없었다. 눈앞에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등 뒤로 한라산이 날개를 펴고 솟아있다. 발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할 만큼 위태롭다. 우리는 한라산의 품 안에서 떨어져 나간 자식처럼 외로운 섬에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순간, 양 선생이 소리쳤다.

"저기 보인다!"

우리 일행은 한 걸음에 절벽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연화바위솔을 조우했다. 연꽃을 닮은 바위솔, 그 아릿한 꿈. 아쉽게도 꽃은 피지 않았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났지만, 연화바위솔은 아직 꽃대조차 올리지 않은 채 바위틈에서 단단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뻤다. 꽃이 피지 않아도 좋았다. 연화바위솔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몇 년 후면 이곳에 수많은 연화바위솔로 물결을 이루겠지.

섬에서 바라보는 정방폭포

우리는 다시 숲 속을 헤치며 또 다른 절벽으로 향했다. 험난한 길이었지만, 서로를 믿고 함께하기에 멈추지 않았다. 함께하는 길은 두렵지 않다. 지도자가 길을 헤맬 수도 있지만, 서로를 신뢰하기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순간이, 우리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다시 밧줄을 잡고 고난의 난코스를 올랐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망망대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정상에 발을 딛뎠다. 기암절벽 끝에서 바라보는 정방폭포 너머로 한라산이 우뚝 솟아있다. 서귀포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위태로워 보이는 절벽 위에서, 연화바위솔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봉오리를 닫은 채, 바람에 흔들리며 단꿈을 꾸고 있다. 연화바위솔은 연꽃을 닮았다. 둥글게 자리한 잎이 활짝 핀 연꽃처럼 보이기에 그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꽃이 피는 순간, 그 생은 마무리된다. 그렇기에 섣불리 꽃을 피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바람과 햇살을 머금고, 깊은 단꿈을 꾸고 싶을 것이다.


딱딱한 절벽에 발붙이고 모진 바람이 불어와 흔들어대도 떠날 수 없는 운명,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섬을 향해 외롭게 부르던 노래는 마침내, 자그마한 꽃송이로 다닥다닥 붙어 타오르는 목마름을 적셔 내릴 것이다.



'아고리'는 화가 이중섭의 애칭입니다. 1951년 가족과 함께 제주로 피난왔지요. 그가 잠시 머물었던 서귀포시 초가. 그 초가에선 섶섬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요. 이중섭이 사랑했던 섶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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