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지랖 덕분에, 뜻하지 않게 아들이 하나 생겼다. 까만 피부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외국인. 그는 우리 부부에게 넉살 좋게 “아빠, 엄마”라 부른다.
지난해 어느 봄날, 김치찌개로 유명한 OO식당. 혼자 식사하던 외국인에게 남편은 다가가 함께 앉자고 했다.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그의 이름은 '솔로몬', 가나 출신으로 한국 생활 6년 차. 한국어도 능숙했지만, 남편은 괜히 영어로 말을 건넸다. 자신의 영어 실력을 총동원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저녁 식사 후엔 노래방으로 향했다. 솔로몬은 한국 노래도 능청스럽게 불렀다.
헤어지기 전, 남편은 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우릴 아빠. 엄마라고 불러도 돼.”
그러자 그는 쑥스러운 기색 하나 없이 “아빠. 엄마!”하고 불렀다.
덩치 큰 외국인 청년에게 ‘엄마’ 소릴 들으니 어색했지만, 나는 미소로 받아주었다.
그는 제주어도 제법 한다. 억양은 살짝 어설퍼 오히려 정겹다. 그 투박함이 우리 부부에겐 작은 웃음을 안겨준다.
솔로몬은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는 것이 꿈이라 했다. 이미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지난여름,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급히 가나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가족들에게 줄 작은 선물도 챙겨 보냈다.
그곳의 장례문화는 독특했다. 무려 석 달 동안 추모 의식을 이어가며, 고인의 천국으로 갔다는 믿음 아래 슬픔보다 기쁨으로 이별을 기념한다 했다.
세 달 뒤, 그는 다시 제주에 돌아왔다. 가나산 코코아로 만든 달지 않은 초콜릿을 선물로 안겼다. 그 마음 씀씀이 참 고마웠다.
그날도 그는 익숙하게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여전히 조금 어색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남편은 오랜만에 솔로몬을 만나자 기분이 좋았는지, ChatGPT를 통해 3자 통역을 시도했다. 처음에 매끄럽지 않았지만, 의도를 정확히 입력하자 가나어와 한국어가 실시간으로 오갔다.
남편은 감탄하며 말했다.
"이제는 어느 나라든 통역사 없이 여행할 수 있겠어!"
가나어가 투박하게 들렸다. 그도 제주어를 들으며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거센 바람처럼, 제주어는 억세고 단단하다. 가나어와 제주의 언어는 어쩌면 그런 점에서 닮았다.
설날 연휴기간에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의 양말엔 구멍이 나 있었고, 엄지발가락과 뒤꿈치가 슬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남편 양말을 몇 켤레 챙겨주며, 비록 새것은 아니지만 정성을 담아 건넸다.
한국의 명절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제주의 문화도 알려줬다. 가끔 제주돼지고기 집에도 함께 다니곤 한다. 그는 매운 음식과 순대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그렇게 남편의 오지랖 덕분에, 내 아들보다 세 살 많은 아들이 생겼다. 까만 피부에 해맑은 미소를 가진 솔로몬. 성실하고 소탈한 그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리고 덤으로 외국인 손자 셋도 생겼다. 인연이란, 이렇게 조용히 삶에 스며드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