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ologize
나는 매일 아침 사과 반 쪽을 먹는다
카삭거리는 식감이 좋아 겉면을 베이킹 소다로만 벅벅 문지르곤 껍질채 씹으며 생각했다.
‘내가 진정한 사과를 해본 적이 있을까, 그리고 그 진심에 동요해 서로의 관계가 이전보다 더 단단해짐을 느낀 적이 있었나?‘ 하고.
사과를 뜻하는 단어 ‘apology’는 그리스어 ‘apologia(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 사과는 그 기원에서부터가 잘못된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이자 유일한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원을 몰라서였나, 그저 사과만 하면 될 일을 괜한 자존심만 부린 탓에 서로의 안색이 잘 익은 사과만큼이나 붉어진 경험이 수두룩하다.
한 번은 내가 건넨 사과를 친구가 탐탁지 않게 받는 것 같아 되려 마음이 상한 경험이 있다. ‘피,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이렇게 사과하는데 너무 한 거 아니야?’하고 속으로 툴툴 거렸다. 더 나아가 ‘지는 뭐 잘못한 거 없나?’하고 친구를 더 철저한 악역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엔 나에게 실언을 던진 친한 언니가 분위기를 가라앉히지 말고 마음 풀라며 강요하듯 건넨 사과를 받았다. 어거지로 얽힌 마음을 풀어낸 척하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오니 불편했던 기분이 두고두고 떠올라서 그 다음부턴 만남을 피하게 됐다.
그렇게 상황이 바뀌니 번뜩 느껴졌다.
내가 친구에게 건넨, 언니가 나에게 건넨 사과는 완성되지 못했다. 그 사과 속엔 진심도 없었고 우리의 상황도 어긋난 마음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사과 속에 잘 익은 진심은 파낸 채, 변명과 자존심이라는 썩은 알맹이만 채워서 폭탄마냥 돌렸을 뿐이었다.
친구에게 툴툴거린 그 마음 속에서조차 나는 오로지 내가 굽힌 자존심만을 생각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너무하다’ 하고 말이다.
이렇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늘어놓은 다급한 변명들에 진심은 없었다. 애초에 나는 그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사과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1.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나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상대의 마음이 상했다면 그 감정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 우리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 나의 결백과 의도를 늘어놓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욱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2. 상대의 입장에서 충분히 고민한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터져버리기까지 상황에 대한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듣는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꺼진 불씨도 다시 살피듯 남은 오해까지 탈탈 털어내야한다. 이때 기회가 된다면 나의 무해했던 의도를 살며시 내비치며 우리의 다름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것이 좋다.
참고로 ‘아니 네가 무슨 마음인지 이해는 하는데 내 말은 그게 아니라’ 하고 말의 운을 띄우는 사람은 이해를 못 한 거니까 다시 한 번 고민해보도록 하자. 진짜 이해를 한 사람은 입장을 바꾼 상황이 왔을때 똑같이 기분이 상해야 마땅하다.
마침내 상대의 기분이 얼추 풀리고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도 아직 사과는 멀었다.
혹여나 비슷한 상황에서 또다시 실수가 반복된다면 원점은 커녕 이제는 진정성마저 무너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3. 바뀐 모습을 보여줘야한다
그때와 같거나 비슷한 상황이 왔을때,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한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점을 상대가 먼저 알아봐준다면 그때 비로소 사과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의 모든 과정에서는 두 사람이 다 있어야 한다.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다는 핑계로 놓친 인연들이 많았다.
지금은 나이가 들고 인간관계도 좁아지니 하나 하나 깊고 소중한 인연들만 남아서 더 잘 지키며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한 번 어긋났던 마음이더라도 진심을 담은 사과를 완성한다면 관계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도 더 잘 가꿔나가고 싶다.
그렇게 뉴턴이 떨어진 사과를 보고 중력을 발견한 것처럼 잘 닦은 사과 반 쪽에서 관계의 해답을 발견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