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동안 빙글뱅글 돌다 보니 한국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떠나는 2번째 일본 여행이다. 첫 번째 여행은 한적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후쿠오카였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편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사카
도쿄는 '내가 바로 일본의 시티다!'라고 외치는 꼬마 아이라면 오사카는 '일본의 도시는 이 정도야'라고 으쓱대는 고등학생 같다. 은은하면서도 웅장한, 모순적인 형용사들이 함께 있어야만 설명되는 도시. 내가 바라보는 오사카였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외국에 있다는 실감이 몸에서 묻어나지 않았다. 머리로는 한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왜인지 모르게 익숙했고 긴장되지 않았다. 처음 보는 길, 처음 마주하는 풍경, 이해할 수 없는 표지판들을 보고도 낯섦을 느끼지 않을 줄 몰랐다. 두 번째라서 그런 걸까. 이래서 한국인들이 일본을 부산이나 제주도 마냥 가벼운 여행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첫걸음이 어렵지, 그 이후로는 오랜만에 가게 되어도 마치 어제 갔던 것처럼 불편하지 않다. 물론 육체적인 힘듦은 어느 여행에서든지 마찬가지이다. 그 힘듦을 즐기게 되는 순간 여행은 계속 반복된다.
외국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웠고, 낯설지는 않았지만 지루한 것은 아니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을 찾는 과정만 놓고 봐도 수많은 필름들이 펼쳐진다. 일본인들에게 영어로 물어보며 서툴게 오고 가는 의사소통, 처음 타보는 오사카의 지하철, 지하철 속 풍경, 지하철 밖 창문으로 스쳐 지나가는 일본의 건물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새로운 기억으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기억들을 모아서 지금처럼 기억을 되새기고 글로 표현할 때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름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이어나가는 것이다.
일본 집들은 한국과 달리 집들이 높이 솟아 있지 않고 낮다. 무채색의 벽면, 나무 창틀, 그 위에 덮인 가옥 지붕이 어우러져 일본스러움을 자아낸다. 아파트도 고층 아파트가 아닌, 우리나라 주택 정도 크기의 건물이다. 지붕이 덮인 집은 짱구가 생각난다면, 아파트는 아따맘마가 생각난다. 바깥을 멍 때렸을 뿐인데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간 것 같은 환상을 준다. 풍경을 가만히 감상하던 중 역에 정차하더니, 일본 남자 고등학생들이 지하철에 우르르 탔다.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넥타이, 직각으로 내려간 회색 교복 바지와 뒤에 매는 메신저 백. 그때서야 실감했다. 나 지금 오사카에 와 있구나. 그들의 일상은 여행객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어준다. 소설 속 전지적 작가가 된 것 마냥 다른 차원에서 멀리 바라보는 기분이다. 이상적으로 그리던 여행지 속 장면이 실제로 들어맞을 때, 나의 낭만이 이루어지고 그 순간 잔잔한 희열을 얻는다.
난간이 툭 튀어나온 주택들을 보면 추억의 애니메이션 <아따맘마>가 떠오른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이 함께 따라온다. 혼자 여행을 하면 내가 가진 체력과 나만의 취향을 가지고 과감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타인이 존재하는 순간 발걸음에 브레이크를 걸게 된다. 상대방이 지금 힘들어하는가? 이 장소는 굳이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브레이크를 걸어야만 평화로운 여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다니는 여행이 좋은 이유는 나의 감정들을 곧바로 공유할 수 있고, 새로운 자극을 함께 느끼는 유대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정에서 내 생각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첫날부터 머릿속이 과열되었고, 그날 밤 끓어오르던 열기는 눈물샘을 통해 터져 나왔다. 그날 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