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자의 반란 by 정박사
메밀꽃이 일다. 20년 가을은 바다에 흰 파도가 철썩이듯 메밀꽃이 만개했다. 주류회사 직원들답게 자연스럽게 ‘메밀꽃 필 무렵’ 주막에 향한다. 오늘도 만석이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의 목소리에 환영의 웃음소리가 묻어 나왔다. 장사가 잘되니 진심으로 기쁘신 모양이다. ‘할렐루야!’, ‘아멘!’ 대신 ‘적셔~’, ‘한잔 ~’, ‘캬~’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6시를 조금 넘긴 주막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들기름과 신김치가 오늘도 콧속에서 드리블 친다. 오늘은 FC바르셀로나의 메시의 리즈시절급 드리블이다. 냄새만 맡아도 배가 고프다는 게 지금인가 보다. 두부김치와 파전, 모둠전, 그리고 막걸리 3병을 나 부장은 당연하듯이 시키고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묻는다. 다른 메뉴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미 시켰기 때문이다.
만드는 시간이 지체되는 모둠전을 뒤로하고 6명의 직원들은 허겁지겁 두부김치와 파전을 먹기 시작한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다. 7시밖에 안 되었지만 벌써 막걸리 3병이 동이 났다. 나부장의 오른팔을 자청했던 서 차장이 지체 없이 막걸리 3병을 주문한다. 드디어 뜨끈한 모둠전이 나오고, 막걸리 3병과 함께 다시 시작이다. 오늘은 전투 모드인가 보다. 마치 저글링 부대의 습격을 보는 듯하다.
12병의 막걸리가 동나고, 다들 얼큰하게 취해 있다. 방심은 금물이라 했던가 갑자기 전남의 아들, 정박사가 나부장의 멱살을 잡는다.
‘에이, X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집에 보내 달라고!’
나부장은 처음에는 당황하였지만, 체면이 있기에 애써 태연한 척하며 멱살 잡힌 손을 뿌리친다.
‘이 새끼가 미쳤나, 정신 안 차려?’ ‘내가 네 친구야?’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다들 말리는 척하지만 내심 즐거운 듯 구경을 하고 있다. 꿀잼인가 보다. 싸우는 소리를 듣고 사장이 타이르며 다음에 오라고 주막에서 쫓아낸다. 결재는 누가 했는지 모르는 것으로 보아 오늘도 외상인가 보다.
메밀꽃 주막 앞에서 담배 한 개비를 물며 제대로 붙기 시작했다. 오늘의 관전 포인트는 ‘데시벨’과 ‘액션’이다. 정박사는 40대 초반이지만 머리가 백발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박사의 외침은 동물원의 백사자가 울부짖을 포효하는 듯했다.
‘나 집에 간다, X발 놈들아!!’
120db의 마무리로 정박사는 메고 있던 백팩을 내팽개치고 백팩 위에서 방방 뛰었다. 마치 한 마리의 맹수 같았다. 그의 포효는 양재역까지 울렸고, 수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와 구경하였다. 시선을 의식한 나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X발거리며 다른 직원들에게 2차로 와인바나 가자 했다. 그렇게 메밀꽃 전투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일주일 후, 백사자 정박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혼자 개발 중이었던 막걸리 개발 소스를 들고 본사 양조장으로 갔다고 전해 들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주류연구소가 서울에 있기에 가족이 있는 전남 양조장으로 발령을 원래 그렇게 되었다고 하나, 나부장의 오른팔을 자처했던 그였기에, 술상무로서의 피로감과 나부장의 개인 오더 주류 개발에 대한 압박이 그를 울부짖게 만든 것이 아니었나 주류 연구직원들은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주류연구소에서는 이직 외에도 다른 양조장으로의 발령과 파견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