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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l 01. 2022

이틀 전부터 설레던 기다림이 이루어졌다. 결국, 비가 내리니 모든 창을 열고 빗소리를 듣는다. 잠들면 안 되는데. 하여, 술을 조절했지만 빗소리에 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 비를 좋아하는 것은 유별난 것이 아니니 자랑하거나 뽐내지는 않는다. 그저, 빗소리, 비 냄새, 흐린 하늘, 서늘한 바람, 이런 것들이 좋은 것뿐이다.


젊은 시절, 음악을 하는 동네 형에게 감동을 받은 것 때문인가. 당시 유행하던 커다란 카세트 덱을 들고 날 찾아와서는, “들어봐. 세상에 이렇게 많은 빗소리가 있더라고.”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는 이미 청춘영화의 설렘이었고, 아스팔트를 때리는 빗소리, 아마도 초록색이겠지, 차양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영롱하다고 해야 할까 청아하다고 해야 할까. 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놀라움. 차 지붕에 떨어지는 똑똑하고 야무진 빗소리. 강물에 떨어지는 뭉개지는 빗소리. 그리고 잘 들리지도 않는 얼굴과 손바닥을 적시는 빗소리.


비가 오면 한강으로 나갔고, 창을 활짝 열었고, 우산을 쓰고 슬리퍼를 신고 비 때림의 소리를 으며 빗물을 밟고 걷는 건 그때부터였나. 광기. 태풍이 오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차를 몰고 바다로 간 것도 그 탓인가. 파도가 폭포처럼 하늘로부터 내게로 떨어질 때, 그 앞에 서서 그냥 죽으리라 즐거워했던 것도 그때부터였나 보다.


빗소리가 잘 들리는 창이 있다. 부딪치는 것들이 많은 좁은 길목으로 향한 창이 그렇다. 넓은 길을 향한 창은, 빗소리보다는 비 내음에 좋다. 아스팔트 바닥을 흘러내리는 비, 가로수를 적시는 비, 차가 드문 새벽녂의 거리는 비의 보물. 2도 정도 낮은 듯한 바람의 느낌이 좋다. 차 없는 젖은 찻길이 눈물겹다. 비 때문에 바닥에 떨어져 버린 마지막 벚꽃잎들은 느닷없이 장만옥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벌써 걱정이다. 이 비가 멈출 때가 멀리 않았으니까. 일주일이나 쉬지 않는 장대비는 이젠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보다. 일주일의 비. 얼마나 황홀할까.


빗소리에는 조동진이나 김현식만큼 빌리 조엘, 퀸도 잘 어울린다. 아, 비니까. 내가 치는 엉터리 피아노 반주에 내가 부르는 엉터리 ‘슬픔도 지나고 나면'도 슬프게 아름다울 정도니까. 비가 내리고 빗소리가 들리고 비의 냉정한 공기를 마시는 지금, 내 행복의 경계가 무너진다.


불알친구가 둘 있었는데 한 놈이 군 복무 중에 면회를 와달라고 해서 다른 두 불알친구가 먼길을 찾았다. 면회신청으로 해서 그놈을 꺼냈더니만 춤추고 술 마시고 싶단다. 내가 가진 돈에 더해 아버지가 사주신 시계를 맡겼다. 군인 불알친구는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때부터 쏟아진 비에 다른 두 불알친구는 물에 빠진 쥐새끼가 되어 겨우 시외버스 터미널 앞의 짜장면 집에서 뜨거운 짬뽕 한 그릇에 추운 몸을 녹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비도 있다.


비가 오면 추운 겨울에 창을 열어도 춥지 않다. 비가 오면 더운 여름에 창을 열어 덥지 않다. 비는 지병인 우울도 잠시 기분 좋은 감정으로 변신시키고, 길고양이들이 잘 있을지 걱정하는 착한 마음도 갖게 한다. 어릴 적 여자 친구의 예쁜 모습도 그립게 만들고, 너무 일찍 죽은 아버지를 떠올려도 그 분과의 행복의 추억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갑자기 음악을 만들 것 같고 느닷없이 가방을 챙겨 이국으로 떠나고 싶게도 만든다. 아. 그리곤, 내 망가져 버린 삶, 희망 없는 삶을 이 비가 다 쓸어냈으면. 비는 신의 선물이다. 인간의 슬픔과 절망, 무료함과 추함을 갑자기 희망과 설렘, 그리고 착한 마음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 모든 음악을 멈춘다. 지금 최고의 음악은 빗소리뿐이다. 첼로와 피아노와, 바흐와 심지어 자클린느 뒤 프레마저도, 그저 무심히 내리는 빗소리를 이길 수 없다.


기다리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벌써 걱정이다. 비가 그칠 것을 걱정한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것은 행복과 불안의 중복이다. 그러다가, 이른 새벽잠에서 깨었으나 아직도 빗소리가 들릴 때의 기쁨은 그 무엇과 감히 비교할 것인가. 마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처럼, 긴 잠에서 깨어나니 여전히 빗소리가 들리는 것은 설국의 비 버전이려나.


그럼 장마를 기다릴 수밖에, 종일 빗소리에 즐거웠으되 자고 나도 여전히 그 즐거움이 지속된다면 그보다 행복할 수 있겠는가. 장맛비. 소리가 너무 작아 귀 기울여야 하는 가랑비가 아니다. 귀를 막지 않는 한, 아니 그럴 순 없지, 종일 내 옆을 떠나지 않는 힘찬 빗소리를 기다릴 수밖에. 그럼 그때는 행복할 것이다.


새벽 두 시. 창밖의 거리는 오로지 비의 몫이다. 사람도 자동차도 그 어떤 인위적인 것들도 움직임이 없는, 그저 모든 것이 멈춰있으되 단지 비가 내리고 빗소리만 들리는 지금이 완벽한 비의 세상이다. 어찌 잠들 수 있겠느냐 말이다. 다시 눈 떴을 때 이 빗소리의 향락이 지속되고 있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결코 잠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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