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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l 02. 2022

죽음보다 무서운 외로움

그럼 힘들다고 말을 하지, 이 놈아.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믿음의 경주를 완주했습니다.”


느닷없는 부고를 받았다.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아버지의 고통. 제자의 죽음이었다. 일주일 전에 행방불명이 되었으나 결국 동네 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그 아이는 학교 행사에서 앞에 나서기를 즐겼으므로 난 이미 그놈을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억지스러운 진행. 내가 싫어하는 웃기지 않는 말초적 개그 코드. 촌스런 양복. 그놈은 수업시간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그저 수업을 방해했다는 말이다. 내 질문에 무조건 대답하고, 또 무조건 질문하는 식으로. 역시 그놈의 대답도 질문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다른 학생들이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지 무시하는 건지 어쨌든 그런 뻔뻔함이 화가 났다.


결국 성질이 폭발하여 학생들 앞에서 그놈을 심히 꾸짖었다. 네 질문은 초등학생 수준보다 더 유치하고, 네 대답은 질문을 이해 하지도 못 함을 입증할 뿐이고, 넌 많은 학우들의 시간을 낭비할 뿐이니 더 이상 대답도 질문도 하지 말라고. 그놈은 내 말을 무시했고 내 성질은 더 더러워졌고 우리 둘 사이에는 서로 상처뿐인, 어쩌면 나 만의 상처뿐인, 전쟁이 계속되었다. 수업시간에 나도 그놈을 무시하기 시작하자 그놈은 장문의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고 나는 장문의 욕으로 답장했다. 그 아이의 편지는 늘 죄송함과 감사함, 그리고 존경의 내용을 담았다. 난 그런 아부는 싫었으므로 또 욕을 해댔다. "쓸데없는 짓 그만하거라."


그러고 보니 며칠 그놈이 보이질 않았다. 수업시간이 평온했고 귀찮은 메일도 없었다. 잠시 평안함 뒤에 걱정은 아닌 그저 궁금함이 생겼다. 무슨 일이지 정도. 전화가 왔다. "저 오빠 여자 친구예요. 지금 오빠가 정신병원에 있는데 선생님 보고 싶어 해서 혹시 면회 오실 수 있는가 해서요." 정신병원은 일반 면회는 안되고 가족면회만 가능한데 그 여학생은 부모를 대신했고 의사는 나의 면회를 허락했다.


그 아이는 오랫동안 심한 조울증으로 고생했고 정신병원이란 무서운 곳에 여러 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독한 약도 계속 먹어야 했다. 이번에도 증세가 심해지자 겁이 나 스스로 병원에 찾아간 것이었다. 그곳은 언제 퇴원할지 기약이 없다. 한 달이 될지 여섯 달이 될지 아니면 그 이상이 될지. 같이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서 그 아이의 아픈 스토리를 들었다. 비로소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픈 것 때문인지 모르고 화내고 야단쳤던 일들이 너무 한심하고 미안했다. 그리고 그냥 너무나도 불쌍했다.


조기 은퇴를 자축하려고 이틀간 야외공연을 했었다. 20여 년 동안의 세월을 회상하며 처음과 끝의 변해가는 내 감정들을 말해주고 그에 맞는 노래들을 불러주는 신파극이었다. 그놈은 당연히 공연에 왔고 울었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나는 김광석의 노래들을 불렀고 그 아이는 녹음해 부모님께 들려주니 김광석보다 더 잘 부른다고 하셨고 그때부터 종종 들으신다고 했다. 아픈 아들이 좋아하는 스승이니 부모도 좋아하려고 애쓰셨나 보다.


그 이후 그놈의 천사 같은 여자 친구는 떠났고 그놈은 또 몇 가지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하다가 한 두 해 전부터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 목장 일을 도왔다. 종종 짧은 편지로 소식을 알렸고 전화를 해서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말한다. “선생님이 싫어하실 테니 빨리 끊겠습니다. 그런데, 사랑합니다. 제가 아팠을 때, 무서웠을 때, 병원으로 찾아와 주신 고마움을 늘 잊지 않습니다.” 병이 심해져 아버지를 때려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지만, 그 아이는 후회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아픈 아들을 사랑하고 걱정했다. “꼭 놀러 오세요. 최고급 한우로 대접합니다.” “알았어 인마. 말이라도 고맙지. 근데 네가 건강한 게 한우보다 낫다. 알재?” “그럼요, 매일 열심히 일하고 운동 많이 하고 건강합니다.” “장하다.”


생각해보니 그 아이의 문자도 전화도 없었던 시간이 한 달은 된 것 같다. 분명 연락이 올 때가 지났는데. 그리고, 오늘 그놈의 죽음을 들었다. 그 아이가 정신병원에 스스로 기어들어간 것도 모르고 그저 날 괴롭히지 않은 지 오래되어 이상하게 여긴 것도 나의 무심함이었던 것처럼, 지겹게 해대던 전화가 없음이 오래 건만 이상하게 여기지도 못한 것도 나의 사랑 없음이었다.


한 달 사이에 네 번의 죽음을 들었다. 고등학교 친구 셋. 한 명은 교통사고, 한 명은 폐암, 그리고 너무나도 가까웠던 또 한 명은 혈액 암. 그리고 오늘 느닷없이, 한 때 너무 귀찮게 여겼으나,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불쌍했던 제자의 죽음. 가슴이 단단하게 조여 오면서 굳이 참으려 하지도 않을 눈물이 쏟아진다. 모범적인 학문의 제자도 아니었던 이상한 제자의 죽음에 왜 이리 슬픈 건지. 난 그 애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 아이한테 달려가 안아주고 머리 쥐어박고 욕하고 같이 소주 한잔 하며 지랄 부렸어야 했는데. “이 그지 같은 놈아, 내가 오래 살아보니까 인생 별 거 없어. 인생 한 방이야. 그니까, 그냥 신나게 살아, 이 그지 같은 짜식아.” 그럼 그 아이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거다. “선생님, 사랑해요. “ 그럴 걸 너무 잘 알아서 그놈 곁에 있는 듯 혼자 소주 마시고 또 운다. 이 그지 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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