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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l 28. 2022

Epilogue

아침에 이미 40분의 투쟁적 의무 산책을 했지만 한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이번 산책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지라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보려 한다. 억지로 걷느라 미처 못 본 동네 사람들, 동네 모습들을 조금 더 기억해  놓고 싶었다. 늘 걷는 길을 따라간다. 개천을 따라 만들어져 있는 테크는 걷기 좋지만 좁아서 반대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면 서로 피해야 하니 그냥 편하게 아스팔트로 걷는다. 대로가 아니라 동네 골목이니 가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만 비켜주면 된다.


늘 보던 사람들이 벌써 길에 나와있다. 분리수거를 위해 빈병을 담아 놓은 비닐을 찢어대는 얄미운 여자는 오늘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돈을 찾고 있다. 여자는 아마도 우리 동네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일 것이다. 걸음도 빠르니 꽤 많은 병을 모으리라. 빈병들을 잘 담아 놓은 비닐봉지도 가차 없이 찢고 그래서 욕도 먹어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단 얼마라도 더 벌어야 하는 것일 테니 그것으로 불쌍히 여기기에 충분하다. 저렇게 욕먹고 애써도 하루에 버는 돈은 정말 적을 것이다. 온종일, 오늘같이 더운 날에도, 빈병을 주으려고 온 동네를 다니는 사람에게 무슨 판단을 하는 것은 너무 무정하다. 폐지나 빈병을 모으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냥 몇만 원 드리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맛있는 거 사드시고 푹 쉬시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아직은 그러지 못해 부끄럽다.


개천가 벤치에선 할머니 세 명이 앉아 무슨 대화를 하고 있고, 그 옆 벤치에는 할아버지가 혼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주무시는 건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 그리고, 또 다른 할아버지가 뒤뚱거리며 열심히 걷는다. 왼쪽 팔과 다리를 잘 못쓰시니 걷는 게 힘들다. 불편한 몸으로 저리도 열심히 걷는 것은 망가진 몸이 더 망가지지 않게 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일 것이니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마음 아프다.


그런데, 노인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덜컥 겁이 난다. 나도 곧 저렇게 되는 거잖아. 10년이 걸릴까? 그보다 빠를 수도 있다. 내 나이엔 언제 어떻게 갑자기 아플지 모르는 거니까. 사람이 늙고 외로우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지 않았으니 살아있는 것이지만, 일도 할 수 없고 여행도 다닐 수 없고 재미있는 일도 없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힘들다. 동네의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렇고, 집에 있는 내 엄마가 그렇고, 나도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하니 다시 우울해진다.


머리를 흔들어 우울한 생각을 몰아내고 다시 걷는다. 동네에는 작고 지저분한 빌라들이 많다. 그중 하나는 ‘만복 하우스’다. 지나갈 때마다 그 이름을 보고 촌스러운데 기분은 좋다고 생각했다. 저기서 살면 나도 복을 받고 웃을 일이 많아질까.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가끔 예쁘고 젊은 여자를 만나면, 그저 지나치다 보는 것뿐이지만, 잠시 우울을 잊고 설레기까지 하다. 그 젊은 여자는 허리가 곧고 머리카락이 풍성하고 배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당당하다. 그럴 때마다 젊음이 너무 부럽고 늙은 내 모습이 싫어진다. 나도 한 때 젊음을 가졌었지만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한 때는 젊었고, 건강했고, 능력도 있었고, 잘 나갔지만, 모든 지나간 것들은 지금 내 것이 아니니 아무 의미 없는 타인의 추억일 뿐이다. 개천가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한 때는 젊고, 예쁘고 잘생긴 청춘들이었지만, 지금은 늙어 추하고 병들고 외로우니 과거의 젊은 시절이 기억나는 것이 오히려 더 슬퍼진다. 우리의 생은 지금이다. 오늘 생각해보니 한쪽 팔과 다리를 절면서 걷는 쪽은 주로 할아버지였고, 허리가 굽은 채 유모차를 밀면서 걷는 쪽은 주로 할머니였던 것 같다.


오늘은 날이 흐리고 바람이 있어 그런지 걷는 게 힘들지 않다. 땀도 많이 안 나고 뜨겁지도 않고, 무엇보다 느긋하게 걷고 있으니 마음이 평안해지는 거구나. 투쟁하듯 걸을 때 느끼지 못했던 여유. 개천이 끝나갈 즈음 뒷골목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보통인데, 갑자기 그 여자가 궁금해졌다. 대학가 서브웨이 앞 버스정류장 근처를  떠나지 않는 이상한 여자. 어차피 이번 산책의 목표는 그동안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고 생각해보는 것이니 대학가로 방향을 틀어본다.


거기 그 여자가 있었고 반가웠다. 그런데 오늘은 귀엽다고 해야 할까. 예의 못생긴 모습과 우스꽝스러운 패션은 여전했고, 손에 든 핸드폰과 어깨에 맨 끈 달린 가방은 여전했는데, 오늘은 한 가지를 더했다. 비눗방울을 만드는 장난감으로 길에, 그리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마구 비눗방울을 뿜어댄다. 그리곤 혼자 웃는다. 역시 저 여자는 불쌍한 게 아니라 행복한 거였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뻔뻔한 짓을 하면서 거짓 없이 웃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나는 결코 할 수 없는 유희다. 사람들 많은 길 한복판에서 비눗방울 날리기라니. 그 여자의 사정이 어떻든지,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보든, 여자가 저렇게 장난치고 웃으면서 오래오래 즐겁고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집에 거의 다 오면 마지막으로 한 골목을 더 돌아온다. 그곳은 종일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골목인데, 얼마 전에 오래 비어있던 상가에 미용실과 카페가 같이 들어섰다. 아마도 가족이거나 친구인가. 매일 걷는 동네니까 걱정이 됐다. 여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골목인데 여기서 장사가 될까 걱정했다. 매일 산책할 때마다 일부러 그 골목으로 돌아오자면 텅 빈 두 가게가 안쓰럽다. 어쩌다 유리창 안에 멍하니 앉아있는 사장일까 직원일까 하고 눈이라도 마추지면 들어가 팔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처음엔 기대를 갖고 시작했을 텐데 지금은 우울하고 근심이 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카페 이름이 ‘샤론'이니 아마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겠구나.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를 기도해야겠다.


하루의 반이 겨우 지났는데 오늘은 벌써 만보가 넘었다. 이러다 이만보 걷겠는 걸 생각하니 흐뭇하다. 투쟁적으로 걷고 또 여유롭게 걸으니 아주 좋은 조합이다. 가끔 이렇게 두 번씩 걸어야겠다 생각해본다. 그러다 보면, 불안도 우울도 줄어들 것이고, 또 웃게 될 일들도 생기겠지. 어린애처럼 비눗방울을 날려대는 그 여자를 봤을 때 거의 웃을 뻔했으니까. 그렇게 잘 버티면, 더 늙게 되겠지만, 인생의 마지막 챕터에서 가끔은 웃음과 즐거움이 생기는 행복한 기적도 일어나리라.


집에 와서 세수를 하고 땀을 식히고 있던 중 같은 동네에서 사업을 하는 옛 제자가 전화했다. “어르신, 점심 드셨습니까?” 이놈은 날 꼭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선생님이라 불러, 난 더 이상 네 선생이 아니라고 했더니만, 자기 맘대로 어르신이란다. “콩국수 좋아하십니까? 진짜 맛있는 집 찾았습니다.” 그렇게 산적같이 생긴 징그런 제자가 외로운 옛 선생을 위해 점심을 같이 먹어준다. 그놈 차를 타고 가는데 묻는다. “요즘 뭐하고 지내십니까?” 그 순간,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이, 그놈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말했다. “야. 인마. 그렇게 물어보지 말랬지.”


음식 솜씨도 연애 솜씨도 좋은 아줌마가 하던 식당은 여전히 문이 닫혀있다. 남편 아닌 애인이 저지른 일이 아직도 해결이 안 된 건가. 아줌마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다. 남편하고 화해했을까 아니면 애인하고 야반도주했을까. 꺼벙이 여사장이 운영하던 카페를 인수한 까칠한 느낌의 여사장이 보이지 않는다. 복덕방 젊은 사장이 알려준다. "거기 또 팔고 갔습니다. 무슨 주점을 한다던데요." 갑자기 꺼벙이와 그다음 젊은 여사장이 하는 주점에 가볼까 하는 마음이 잠깐 들기도 했다, 무뚝뚝한 중국집 아줌마는 아마도 무슨 암수술을 한 것 같다. 얼마 전부터 머리에 모자를 썼는데 눈썹도 다 빠진 것 같았다. "편찮으셨습니까?" 물었더니 이젠 괜찮다고 한다. 식당에 나와 여전히 퉁명스레 손님을 받는 걸 보면 수술 경과가 좋은 것 같아 다행이다.


95살 먹은, 그런데 사실은 97살이란 말도 있는, 동네 대장 할머니를 본지 오래다. 그 자리를 88세, 재작년부터 88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사실 90일 듯한 부대장 할머니가 접수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종종 만나는데 새로운 부하 할머니들을 옆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다. 그분의 성격상 들어주기보다는 분명히 가르치고 훈계하는 게 맞을 거다. 그리고 날 보면 늘 묻는다. "어머님 잘 계시나. 우리 나이 되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잘해드려라. 그래도 정말 효자다. 기특하다." 올해 말 즈음 경기도로 이사 갈 것 같다고 했더니 말씀하신다. "섭섭해서 어쩌나. 동네 친구 하나 또 없어지네." 난 동네 부두목 할머니의 친구였다. 하긴 뭐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구먼. 이 동네를 떠나기 전에 할머니 모시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리라 다짐한다.


이 동네에 산지 여섯 해가 지났다. 그리고 내년이면 새로운 동네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럼 이곳의 모든 기억들은 지나간 옛 추억이 될 것이고 새로운 동네에서 또 추억거리를 만들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는 법이니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 새로운 시작이 죽어가는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 같은 좋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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