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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l 25. 2022

PTSD

잠시 밖에 나갔다가 다시 집에 들어올 때마다 공포심이 든다. 문을 열었을 때 내 강아지가 죽어있는 걸 볼까 봐 불안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불과 한 시간 만에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죽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집 안에서 질주하는 차에 부딪칠 일도 없고 내가 모르는 어떤 독을 먹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비이성적으로 불안하다. 밤이고 낮이고 잠만 자는 엄마가 자다가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또 불안하다. 역시 비이성적인 의심이지만 어쩌겠나 불안한 것을,


집에 와서 불안으로 경직된 가슴으로 문을 열었을 때 아이들이 반갑게 꼬리 치며 달려들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안도의 한숨이다. 잠들어 있는 엄마를 조심스레 들여다보고는 숨 쉬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잠자다가 갑자기 깨어 겁을 잔뜩 먹고는 침대에서 같이 잠자고 있는 세 아이들을 살펴본다. 숨 쉬고 있으면 죽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다시 잠든다. 나는 꽤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여겼음에도 이런 근거 없는 불안을 이길 수 없다. 갑자기 전화가 오면 불안하다. 또 누가 죽었는가. 나의 죽음을 걱정할 겨를이 없다. 어쩌면 그들보다 내 숨이 먼저 멎을 건데.


어떤 생명들은 고래 힘줄보다 질기다던데, 내겐 생명들이 너무 연약했다. 조금 전에는 살아 있었어도 잠시 후 모든 것이 끝나 있곤 했다. 트라우마. 결국 PTSD. 그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았았다. 전쟁도, 고문도,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큰 사고도 겪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었다. 늘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하다가 갑자기 공포가 밀려온다. 딱 일 년의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죽음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탓이다. 오래전 할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죽고, 큰 아버지가, 작은 아버지가,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들이 죽었지만, 그것들은 적당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죽음들이니 내 뇌와 심장을 손상시킬 정도의 트라우마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10년에 걸쳐 일어남이 자연스러운 죽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는 마음과 몸에 줄지어 상처를 덧입혔다. 엄마가 병원에서 생사를 오가던 그때, 또 다른 병원에서는 친한 친구가 혈액암으로 마지막으로 죽음을 버티고 있었다. 코로나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었으니, 그저 매일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통화음을 듣는 동안 벌써 불안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엄마 어때?" 누나의 대답을 듣고 잠시 안도하고 나면, 이번엔 친구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오늘은 상태가 어때요?"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 파양 당해 내게 온 아이는 노화로 심장이 나빠져서 폐수종이 왔고 투약과 입원을 반복하며 1년 이상을 버텼지만 결국 살아야 하는 고통을 끝내고 하늘로 갔다. 아직 경직되지 않은 아이의 주검을 가슴에 품고 얼마나 울었던가. 그리고 친구는 혈액암이 온몸에 퍼져 장기들이 다 망가졌고, 게다가 독한 항암의 부작용을 견뎌내지 못하여 결국 하늘로 떠났다. 빈소에 들어서는 순간, 그놈의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열했다. 몇 달 전까지 매일 전화해서 소식 듣고 농담한 게 생생한데 이렇게 죽음이 가까웠다니. 사실은 나도 그놈도 알고 있었지만 서로 모르는 척 거짓한 거였다. 그리곤 마치 잊고 있었던 것처럼, 갑자기 누나의 전화를 받으면 가슴이 또 절벽처럼 내려앉는다. "엄마는?" 모든 치료와 검사를 거부하고 엄마를 퇴원시켰다. 병원에서 아무 희망 없이 피만 뽑다가 죽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누나의 지옥 같은 병간호가 시작되었다.


너무 사랑했던 고양이가 하루 만에 죽었다. 두 살 생일을 한 달 남겨놓고 너무 어이없게 너무 가슴 아프게 죽었다. 의료사고. 고양이는 영물이라 목숨이 아홉 개라 했는데 내 고양이는 왜 목숨이 한 개도 안되었던 건지. 고양이의 죽음은 많은 아픔과 죽음 중에서도 내게는 결정타였다. 그리고는 회복할 틈도 주지 않고 이번엔 누나가 쓰러졌다. 급성간염. 간이 다 망가져서 약을 써도 조금도 재생되지 않았다. 입원한 누나한테 전화할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힘이 없더니 결국 전화를 받지도 못했다.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의사의 말에 착한 매형과 조카가 검사를 받던 중 기적이 일어났고 누나는 간이식을 받았다. 젊은 남자의 뇌사와 부모의 장기기증 결정, 그리고 어떤 영문인지 누나에게 먼저 순서가 왔다. 불행 중 기적이었다. 누나가 아프니 아픈 엄마를 집으로 모셔왔고 누나의 짐을 내가 이어받았으니 내 삶은 웃을 수 없다.


운명은 잔인하다. 잠시 회복할 시간 정도는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그러니까 불알친구가 갑자기 또 죽었다. 이틀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아침에 또 전화가 왔다. "어이 친구, 그새 또 내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나?" 나의 농담에 친구의 아들이 대답한다. 순간 알았다. 아, 또 잔인한 비극이 날 찾아왔구나. 집에서 갑자기 대동맥 파열로 쓰러져 119로 병원에 가는 동안 숨이 멎었단다. 친구의 빈소로 달려갔고 또 그놈의 영정사진 앞에서 또 오열했다. 1년 사이에 제일 가까운 친구 둘이 다 죽었다. 내 죽음을 맡기려 했던 두 친구들이었는데 둘 다 한꺼번에 나를 떠났다.


반복된 슬픔으로 삶이 우울뿐인 나를 불쌍히 여겨 하늘이 예상치 못한 작은 즐거움을 주셨다. 우리 집 마당에 살던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매일 그 아이들을 보고, 밥과 물을 주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러나 내게 행복은 없었다. 엄마 고양이가 죽었다. 왜 죽게 되었는지 난 결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만들어 준 종이상자 집 앞에 쓰러져 잠들었다. 죽음이 오자 집을, 그리고 밥 주던 나를 찾은 것인가. 내 삶에 비극은 계속됐다. 새끼 다섯 마리 중에서 두 마리가 죽었다. 한 아이는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대문 앞에 잠자듯 누워있었고, 또 한 아이는 자기가 태어난 창고 안에 쓰러져 있었다. 길고양이가 내게 주었던 잠시의 기쁨들은 곧 몇 배의 더 큰 불행으로 내게 보복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PTSD. 지난 1년 동안 많은 죽음과 아픔들을 한꺼번에 겪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에 병이 생겼다. 무엇보다 죽음의 트라우마가 무섭다. 권투선수들이 펀를 너무 많이 맞으면 뇌가 물러지고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 진다고 했던가. 나도 그랬다. 계속되는 이별과 죽음과 슬픔과 불안이 주는 상처가 쌓이니, 그냥 여기서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맞으면, 더 상처 입으면, 그런데도 아직도 살아서 싸워야 한다면, 너무 고통스러워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늘 긴장하고 불안하고 의심한다. 갑작스러운 공포가 밀려온다. 어느 날 숨 쉬는 것이 힘들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는 무작정 걸었다. 우울증에 제일 좋은 약이 운동이라더니 그랬다. 그냥 마구 걷다 보니 불안과 공포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다시 집에 들어와 문을 여는 순간의 공포가 반복되곤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약해졌다. 하루에 두세 번씩 뛰쳐나가기도 했고, 그럼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으니, 그런 일들을 반복했다. 의사들은 하루 7천 걸음을 걸으면 건강에 충분하다고 하던데 나는 매일 만 오천 걸음을 걷는다. 건강을 위해 걷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너무 불안하니까, 그래서 살아야 하니까 걷고 또 걷는 거다.


앞으로도 많은 죽음들을 겪을 것이다. 그건 자연의 법칙이고 당연한 일이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계속 트라우마가 쌓일 것인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제발 한꺼번에 일어나지만 말아 달라고 기도한다. 천수를 다하고 죽는 소식은 괜찮으니 너무 일찍 병이나 사고로 죽는 소식을 듣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를 치료해 주기를, 조금 더 무심해지고, 맷집이 강해지고,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매일 걷고 또 걸을 거다. 인생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게 주어진 운명을 온몸과 마음으로 버텨내면서 걸어가는 거니까 최대한 버틸 것이다, 이렇게 당하기만 하기는 싫다. PTSD에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럼 내가 너무 불쌍하니, 한번 겨루어 이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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