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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Dec 15. 2022

O형과 A형의 결혼 난 반댈세

올 초에 둘째가 결혼하여 며칠 전에 손주가 태어났다. 가족 단톡방에 고생했다, 축하한다, 아기가 예쁘구나 등등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고 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심이기도 하고 예의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며느리가 아기 혈액형이 O형이라 하자, 역시 O형인 아내가 신이 났다. 집안이 온통 A형들인데 귀한 O형이 나왔구나. 성격 좋은 분위기 메이커지. 너희들에게 큰 복이다. 착한 며느리가 화답한다. 어머님이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아내가 또 화답한다. 할머니하고 잘 통하겠구나. 나는 속으로 말한다. O형하고 사는 A형이 얼마나 힘든지 늬들이 알기나 하냐.


교회 권사인 아내는 성경보다 혈액형을 더 믿었다. 하루는 아내가 마구 웃으면서 거실로 나온다. 혈액형에 따른 사람의 뇌구조를 보여주는 그림을 보여준다. 0형의 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밥이다. 아내도 나도 인정했다. 먹는 게 그리도 좋고 그렇게 먹어도 또 먹고 싶으냐고 나는 늘 물었고, 아내는 아니라고 하지만 먹고 또 먹고 그리고 먹는 게 좋단다. 나보고 그렇게 새 모이처럼 먹어서 어찌 사느냔다. 나는 그렇게 먹는 게 인간이냐고 대꾸한다. 매일 체중의 신기록을 경신하는 아내는 먹는 게 그리도 좋다. 뇌에서 가장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웃기고 싶은데 잘 안된단다. O형은 유머 감각이 떨어진다. 아니 거의 없다. 아내는 모든 것이 다큐다. 나는 장난치고 농담하는 것을 좋아하고 정말 잘 하지만, 아내한테는 통하질 않으니 아내 앞에선 말이 적어진다. 농담을 해도 다큐로 받아 내 말을 심각하게 비판하니 재미가 없다.


O형의 결정적인 장점인 동시에 단점은 자기감정에만 지극히 충실하다는 특징이다. O형은 행복하다. 자신의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니까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타인의 감정에는 철저하게 무감각하다. 배려심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가끔 부부싸움을 하면 아내는 구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악한 말들을 쏟아낸다. 시간이 지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뭘 그런 걸 기억해. 그냥 내 감정을 쏟아내는 말이지. 말 뿐인 거라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거야. 소심한 A형은 그런 걸 기억하고 있냐. 내게 욕하고 왜 욕했냐고 하면 뭘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하냐고 또 욕한다. O형은 마음이 편하다. 자기감정에 충실하니 마음에 쌓이는 게 없다. 타인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참는 일은 결코 없다. 얼마나 편하고 행복할까. 그런 행복한 O형하고 사는 착하고 배려심 많은 A형의 고통과 후회 따위는 소심함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내 아버지와 엄마는 모두 AB형이다. 아버지는 피를 좋은 쪽으로 써서 존경받는 학자가 되었다. 엄마는 그 똑똑함을 조금 잘 못 쓴듯하다. 일단 사람을 구분한다. 예의를 갖출 사람과 무시할 사람. 남편이 미친 듯이 좋다가 갑자기 꼴도 보기 싫어진다는 어떤 AB형 아내의 고백과 유사하다. 수직적 변덕과 수평적 변덕 정도의 차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엄마를 돌봤던 누나는 엄마가 너무 힘들었단다. 아니 어떻게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안 하냐. 엄마한테 누나는 무시할 사람으로 분류된 거다.


B형은 지랄 맞다니 좋은 피는 없는가 보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그 모습이 무한대일진대 같은 피라도 좋은 성질과 지랄 같은 성질을 동시에 갖는 게 당연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피의 단점들만 말하고 있는 거다. 내 피는 빼고. 남을 욕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자 재미있는 일인가 보다. A형은 착하고 배려심이 많아요. B형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게 멋있어요. AB형은 똑똑하고 뭔가 멋있어요. O형은 성격 좋고 뒤끝이 없어요. 이런 류의 피 평가는 별로 없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O형과 살았는데 내 판단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O형들을 관찰해본다. 놀라웠다. 내가 아는 O형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에 지극히 충실했고 타인의 감정에는 절대적으로 둔감했다. 피 탓이다.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다. 피가 그런 걸 어쩌겠나. 매형은 사람이 좋다. 착하다. 얼마 전 누나가 급성 간염으로 죽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간이식을 받았다. 한숨 돌린 매형이 말한다. 너도 조심해. 다음은 네 차례야. 누나도 나도 엄마한테 물려받은 게 있다. B형 간염 바이러스. 그러니 누나처럼 나도 언제 죽을 지경이 될지 알 수 없다. 시한폭탄. 그러나 다음은 네 차례라니. 아무리 나를 걱정해주는 말이려니 여기려고 해도 어이가 없다. 그 따위 말을 할 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거다. 매형은 O형이니까.


O형에 대해 좋게 생각한 적도 있다. 덜렁대고 말이 많지만 뒤끝이 없다. 뒤끝이 없다는 건 꽁하지 않다는 말이고 좋은 성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틀린 평가다.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타인이 입은 속상함과 상처에 대해서도 뒤끝이 없다. 그런 건 뒤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한 말이 저 사람을 기분 나쁘게 했나, 상처를 주었나, 그 정도의 뒤끝이 있어야 인간이다. 이런 뒤끝 없는 절대적 이기주의 O형들.


내가 찾아낸 O형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항상 ‘나’로 문장이 시작된다. 나는, 내가, 내 생각에는, 나, 나, 나..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는 더 재밌다. 누가 어떤 얘기를 하든지 O형은 그다음에 ‘나는’ 하며 말을 시작한다. 누가 아파서 입원했단다. 그럼 우리 착한 A형의 반응은 이런 거다. 많이 아팠지? 수술이 보통 일이 아닌데 잘 견뎠네. 타인을 주어로 하는 그 따위 말들을 듣는 일이 너무 힘든 O형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한다. 나도 아파서 입원한 적이 있는데 말이야. 내가 아팠다고. 내가 입원했었다고. 나. 나. 나.  (그러나 이 부분은 다소 확신이 없다. 피 때문인지 아니면 성씨 때문인지 구분하기 힘든 면이 있다.)


아내는 말한다. O형하고 A형은 궁합이 좋아. 당신이야 좋겠지. A형과 결혼한 O형은 편하다. A형이 다 참고 귀찮은 일 다해주니까. O형하고 사는 착한 A형의 비애에 대해서 행복한 O형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내 아내가 나쁜 게 아니다. 그 그지 같은 O형의 피가 재수 없는 거다. 손주가 O형이라니, 혹시 그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A형 처자와 결혼하는 일은 목숨 걸고 막을 것이다. 그 아이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고 소중한 존재인데 O형한테 무시당하며 사는건 너무 불쌍하니까. 난 이 결혼 반댈세.


(이 글은 너무 착해서 타인을 배려하느라 오히려 소심하다고 욕먹는 세상의 모든 A형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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