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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Dec 16. 2022

천국을 기대한다

출근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길하다. 아내가 좋은 일로 전화한 적이 있던가. 여보. 새끼 고양이 죽은 거 같아. 어떻게 알아? 새끼가 집에서 반쯤 나와 누워있는데 움직이질 않아. 엄마는 그 옆에 있고. 불길했고 예상 가능했다. 마당으로 내려가 보니 익숙한 상황이다. 새끼는 이미 죽어있었고 어미는 황망한 채 그 옆에 가만히 있었다. 집 마당에서 창고에서 치운 고양이들이 벌써 다섯 마리다. 그중 넷은 태어난 지 두 달도 안된 새끼들이다.


내가 뭘 잘 못했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길고양이의 수명이 2-3년을 넘지 못한단다. 집고양이의 평균수명이 15년인데 겨우 2-3년을 못 산다니. 그리고 새끼 고양이가 한 살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10%도 안된단다. 봄가을에 주로 태어나는 새끼들이 여름과 겨울을 이겨내기가 그렇게 힘든가 보다. 인간세상에서 연약한 짐승이 살아남는 것이 어쩌면 야생에서보다 더 힘든 일일까.


매일 밥을 채워주고 깨끗한 물을 갈아주고 추울까 봐 따뜻한 집도 마련해주었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되는 건가 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고양이들이 집에서 나오질 않았다. 밥 주러 창고에 들어갈 때만 새끼는 구석으로 도망치고 어미는 나한테 소리칠 뿐. 아픈 건가 걱정도 했었는데.


죽은 새끼를 치우고 돌아보니 어미가 마당 한가운데 서있다. 창고에도 집에도 안 들어간다. 새끼를 찾고 있는 건가. 기다리고 있는 건가. 새끼가 돌아왔을 때 어미가 안 보이면 불안해할까 봐 저렇게 움직이지도 않고 서있는 건가. 뱃속에 품고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새끼 세 마리가 이젠 다 사라졌다. 아무리 길고양이의 숙명이라고 해도 너무 잔인하다. 명치 언저리가 아파온다. 그럼 나가야 한다. 마음이 더 아프기 전에 걸어야 한다. 그래야 고통을 견딜 수 있다.


한 시간쯤 걷고 다시 집에 왔으나 어미는 여전히 마당 한가운데 서있다. 저 어미의 마음이 어떨까 상상할 수도 없다. 새끼의 죽음을 알았고 이젠 혼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쓸쓸하고 허망할까. 슬픔은 산 자들의 몫이다. 나도 어미도 슬프다.


웃을 일이, 행복한 일이 내게도 일어나기를 꿈꿔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따뜻한 봄이 되었을 때, 엄마 고양이가  다시 좋은 짝을 만나고, 마당에서 예쁜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쯤 낳아서, 그러니까 일곱 고양이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그려본다. 마당과 창고에 생명의 환희가 가득하다. 죽음은 없어야 한다. 천국이 보고 싶다.


창고에 캣타워가 쓸쓸히 서있다. 고양이들을 위해 주문했다. 추운 겨울 창고 안에서 재밌게 놀게 해주고 싶었으나 이젠 버려진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대로 놓아 둘 것이다. 봄이 되서 다시 마당 가득 이리 저리 뛰어다닐 고양이 가족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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