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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Dec 17. 2022

나쓰메 소세끼

얼마 전 알게 된 내 둘째 며느리는 국어 선생님인데 작가 지망생이다. 조용하고 책을 많이 읽는다니 난 아주 좋았다. 며느리하고 좀 친해지려고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세 권의 책을 보내주었다. 하나는 장 그르니에의 ‘섬’이라는 책인데, 장 그르니에는 알베르 까뮈의 스승이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까뮈도 힘든데 그 스승이라니 절망이다. 그 책은 매우 철학적인지라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두껍지도 않은 책이었지만, 읽기를 포기했다. 내가 그 책을 이해할 수준이 아님을 인정한 거다. 괘씸한 며느리. 그래 기선제압에서 네가 이겼다.


나머지 두 권은 같은 저자의 책인데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끼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마음’이었다. '설국'의 카와바타 야스나리와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해서 몇 번이나 읽고 또 읽고 했지만, 나메 소세끼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소새끼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유치하고도 상투적인 농을 참을 수준이 못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소세끼의 첫 작품이라는데 고양이가 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독특하고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글이 아주 재밌거나 감동적이진 않았다.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다. 그냥 나한테 그랬다는 말이다. 하여, 어느새 끝까지 읽은 게 아니라 겨우 다 읽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마음’이란 소설을 읽었다. 며느리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정독을 하려고 노력했다. 뭐랄까. 급격한 전개도 없고 긴장되는 사건도 없다.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도 평온하고도 길게 묘사할 수 있구나. 극적인 전개나 화려한 묘사가 전혀 없는 너무나도 담백한 무채색의 글이 의외로 감동을 준다. 심지어 오랫동안 잊었던 평안을 느낀다.


소세끼의 글은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하곤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다. 어떻게 좋으냐면 그냥 좋다. 거 참 이상한 작가 구만.  혼란스러운 김에 소세끼의 책을 몇 권 더 주문했다. ‘문’이라는 소설을 읽고는 감탄했다. 이렇게도 책이 되는구나. 눈을 뜨니 아침이고 잠시 쉬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고 어느새 날이 어두우니 저녁이 되어 하루가 지나갔다는 식이다. 이렇게 써도 되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네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일본의 국민작가라니.


그러다가 ‘도련님’과 ‘산시로’를 읽어가면서 소세끼가 엄청나게 깊은 사색과 학문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 전혀 과장하지도 꾸미지도 않고 그저 지나치게 담백하게 글을 쓰는 건, 자신이 있기 때문이리다. 그 후 소세끼의 강연과 편지 글을 읽게 되니 알겠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은 대략 이렇다. 글은 사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문장을 어떻게 끝낼지, 어떻게 표현하면 좀 더 감동을 줄지 생각하는 작가는 쓰레기다. 사상이 깊어지면 결국 힘찬 강물이 둑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향해 쏟아지듯 글로 써지는 것이다. 부끄러웠다. 소세끼를 이해 못 한 것도 그랬지만 나 자신이 소세끼가 경멸하는 글솜씨 부리는 글을 쓰려고 애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웠다.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내가 학문의 깊이도 사색의 깊이도 철학의 깊이도 없는 사람이니 좋은 글을 쓸 수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세끼는 독특하다. 문부성 장학생으로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 강사(교수?)를 하다가 그만두고 아사히 신문사에 소설을 쓰는 전속작가가 되었다. 일본 최고 대학의 교수를 그만두고 신문사에 들어가다니. 괴짜다. 소세끼는 교수와 박사 같은 이름을 싫어했다. 그런 것은 남에게 보이는 위선이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므로 자신의 진실된 삶이 아니란다. 그러니 하고 싶지 않은 강의를 하는 대신 그냥 자신이 원하는 글만 쓰면 먹고 살 돈을 준다는 신문사의 제안은 소세끼에겐 구원의 복음이었으리라. 문부성에서 박사학위를 주겠다고 했을 때도 소세끼는 화를 내면서 거절을 했다. 일관성이 있다. 소세끼는 타인의 평가를 무시하고 철저하게 자기본위의 삶을 살았던 사람인데 그것이 가능했던 건 깊은 문학적 지식과 사고와 철학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에이 씨. 소세끼의 소설을 죄다 주문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총 스무 권쯤이니 이걸 다 읽고 나면 그를, 그의 문학을 좀 이해할 수 있겠지. 대단한 착각이었다. ‘우미인초’를 읽다가 장 그르니에와는 다른, 그러나 동일한 현기증을 느꼈다. 일본의 전통문화에 대한 초박식을 화려하게 적고 있으니 한국 문화도 모르는 내가 어찌 글에 몰두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풀베개’는 또 한 번 소세끼에 대한 나의 편견을 박살 내었고, ‘갱부’를 읽으려니 난 이 사람을 절대 대충이라도 묘사조차 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근현대 일본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아사히 신문이 선정한 지난 1천 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 1905년 그의 첫 작품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했고 1916년에 위궤양 악화로 생을 마감했으니 소세끼는 일본 최고의 작가가 되는데 겨우 10년 남짓한 시간이면 충분했나 보다. 존경, 경의, 그리고 좌절. 하여, 나는 그저 존경과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한 순간도 잊지 않은 채 계속 그의 소설들을 담백히 읽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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