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는 파양 당한 아이다. 살던 집에선 어린 아들이 아토피였고 젊은 엄마가 아팠으니 강아지를 돌 볼 수 없었다. 두리의 나이는 정확히 모른다. 그냥 내게 왔을 때 일곱 살 정도라고 알고 있다. 작고 하얀 장모치와와. 처음엔 사실 두리에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듬성듬성 털이 빠져있었고 꼬리는 마치 쥐꼬리처럼 빈약했다. 애교도 없었다. 게다가 별이가 텃세를 부렸다. 그럼 두리는 대들지도 못한 채 주눅이 들어 구석으로 밀려났다. 정이 들 수도 줄 수도 없는 안쓰러운 아이였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고 관심과 애정도 받지 못했던 탓에 털이 빠지고 푸석해졌나 보다. 버려진 강아지들은 평생 그 상처를 가지고 산다고 한다. 두리는 자신이 버려지고 남의 집에 왔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기득권자 김별이 텃세를 부려도 그냥 당하기만 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일 년쯤 지났을까. 드디어 두리는 먼저 다가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고 별이의 텃세에 맞서기 시작했다. 비로소 여기가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던 거다. 자신이 여기 속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던 거다. 놀랍게도 털이 자라 빠진 곳이 채워졌고 풍성해졌다. 볼품없던 쥐꼬리는 털이 풍성해져 공작꼬리보다 더 우아해졌다. 주인에게서 버려진 마음의 상처가 아물었나 보다. 감사했다.
김별과 두리. 적과의 동침
별이가 죽고 난 후 타샤와 두리는 늘 같이 산책을 했고 두리는 동네의 실레브리티가 됐다. 열명 중에 아홉은 두리가 예쁘다고 멈춰서 쳐다보고 만져본다. 온몸이 하얗고 풍성한 털로 덮였고 통통하고 너무 작았으니 얼마나 예쁘겠는가. 어떤 할머니는, 얘 나줘 나 주면 안 돼. 그러면서 두리를 안고 막 도망가기도 했다. 그 후 멀리서 그 할머니가 보이면 난 방향을 틀어야 했음은 당연하다. 동네에 중고등학교가 있다. 여학생들은 두리를 보면 죄다 모여들어 귀엽다고 난리법석이다. 그럼 두리는 그 상황을 즐긴다. 꼬리를 치고 뒤집어 배를 보이기도 하고, 그럼 아이들은 또 소리치고 난리블루스. 남학생들은 많이 다르다. 얘가 뭐예요? 쥐예요? 이런 놈도 있고 심지어, 얘 장난감이에요? 그럼 건전지 넣으면 움직이지. 정말요? 남자애들 수준이 떨어지는 건 왜 늘 변함이 없는 건가.
그렇게 몇 년이 흘러 두리는 노견이 되었고 결국 아팠다. 어느 날, 침대에서 자는 두리의 숨이 너무 가빴고, 병원에 가니 심장이 나쁘단다. 강아지가 나이가 들면 심장판막이 약해져서 피를 제대로 내보지 못해 피가 역류하고, 그래서 심장이 비대해지면서 그 압력으로 폐에 물이 차는 소위 폐수종이다. 나이 든 소형강아지들이 흔히 겪는 병이란다. 물속에서 숨 쉬는 것 같을 겁니다. 그래서 숨을 가쁘게 쉬는 거고요.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이뇨제를 써서 폐에서 물을 짜낸다. 그럼 폐수종은 나아지지만, 억지로 오줌을 짜내다 보니 신장이 망가진다. 결국 심장병으로 인한 폐수종으로 죽거나 아니면 신장이 망가져 죽거나 하는 것뿐 치료는 없다. 그래도 숨을 쉴 수 없는 게 당장의 고통이니 계속 이뇨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심장은 점점 더 나빠졌고 그에 따라 이뇨제의 양도 늘어났다.
두리가 상태가 너무 좋았다. 호흡수를 세는 것이 중요한 것을 두리 때문에 알았다. 일분에 삼십 회를 넘지 않으면 괜찮지만 그 이상이면 폐수종이다. 그런데, 일분에 스무 번 정도였다. 마치 강한 심장을 가진 어린 강아지 같았다. 두리가 건강한 듯하여 아내와 나는 타샤와 두리를 데리고 오랫동안 기대했던 강원도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를 걸었고 사진을 찍었고 즐거웠다. 두리도 바다를 보고 모래밭을 걷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그날 밤, 두리의 호흡이 급속히 나빠졌다. 일분에 거의 백번이다. 강릉과 속초의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자신의 병원에서 강아지가 죽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이해됐다. 아내와 나는 급히 짐을 싸서 밤새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차 안에서 두리는 너무 힘들어했고 몇 번을 차를 세워 두리를 쉬게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새벽에 집에 도착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가 아닌지라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이 없다. 두리가 다니는 병원은 아침 10시가 돼야 문을 연다. 두리 때문에 사놓은 산소호흡기를 입에 대 주면서 두리를 안고 기도하고 빌었다. 죽지 마. 버텨야 돼.
더 참지 못하고 아홉 시에 병원에 갔고 마침 두리의 주치의가 일찍 나와있어 두리를 받아 산소룸에 넣었다. 늘 그랬듯이 하루 정도 있으면 또 좋아지겠지. 상황파악을 못하는 사람처럼 이기적으로 안심했다. 그러나, 오후에 전화가 왔다. 상태가 더 나빠집니다. 준비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벌써 일 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왔지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전화가 왔다. 와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두리가 죽었구나. 아내와 같이 두리를 데리러 갔다. 당직의사가 두리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벌써 이십 분 째란다. 내가 왔을 때 뭔가 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하는 거다. 그만하세요. 됐습니다. 그냥 보내주세요.
집에 와서 두리를 가까이 그리고 오랫동안 쳐다봤다. 너무 작고 예쁘고 평안하다. 질투 많고 angry가 특징인 치와와인데, 숨이 멎은 두리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두리를 안아본다. 아직 부드럽고 따뜻했고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웠다. 나중에 내가 죽었을 때도 두리처럼 평온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할 수 있기를 바랄 정도였다. 두리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안는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두리와 함께한 모든 시간들 보다 지금이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이게 끝이고 이별이라니.
두리를 별이 옆에 묻었다. 텃세 부리던 별이, 주눅 들었던 두리. 그러다 정들어 치고받으며 장난치고 서로 의지했던 두 작은 아이들이 같이 누워있다. 한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파서 너무 일찍 죽었고, 또 한 아이는 나이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몸이 망가져 죽었다. 시츄계의 김태희 별이와 보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훔쳤던 귀여운 두리. 내게 와줘서 고마웠고, 같이 지낸 추억들이 행복했고, 너희들이 아플 때 너무 미안했고, 결국 나를 떠났을 때 내 심장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으니 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너희를 또 만날 거다. 일곱 살에 파양 당해 일 년 동안 주눅 들었고 겨우 적응해서 사 년간 행복하게 살다가 하늘로 떠난 두리. 아픈 손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