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이도 보리와 같은 장모치와와다. 보리는 두리가 죽은 후에 똑같은 치와와를 데려온 것이나 장군이를 입양한 이유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운 고양이 블루가 너무 어이없고 안타까운 사고로 죽은 후, 그 슬픔이 너무 커서 난 블루와 똑같은 러시안블루를 데려오고 싶었다. 보리도 원했다. 보리와 블루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고, 블루가 없어진 후, 보리는 온 집안을 다니면서 블루를 찾았고 어쩔 줄 몰라하며 불안해했으니까. 그러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아내가 반대했다. 물론 아내의 반대를 무시하고 고양이를 데려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 아내가 화를 낼 것이고, 나는 아내가 인상 쓰고 화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으므로 포기했다. 그리고 짐승도 가족인데, 아내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를 데려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심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고양이는 사람도 강아지도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줘. 블루는 내게 그런 존재였어. 내가 이렇게 슬픈데 그래도 반대해야 되냐고. 마이동풍이며 우이독경이다. 아내는 O형이니 오직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뿐이다. 타인의 감정에는 그놈의 피 때문에 어차피 아무런 관심도 공감능력도 없다. 아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양보를 제안했다. 그럼 보리하고 똑같은 애를 데려와. 아내는 보리를 좋아한다. 보리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장모치와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으니 그런 아이라면 나도 자신도 적당히 타협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장모치와와만 분양하는 브리더, 그러니까 우리말로 견사를 찾아봤다. 전국에 몇 곳이 있었으나 결국 제일 가까운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분양이 가능한 아이들 사진을 보내왔다. 석 달에서 다섯 달 사이의 아이들. 일단 그건 마음에 들었다. 두 달 만에 분양을 한다면 강아지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없는 견사로 여겨 난 거부했을 거다. 보내온 사진은 두 놈이었다. 극과 극. 한 아이는 그러니까 치와와의 김태희. 한눈에 반할 정도로 예쁜 여자애였다. 사진을 보고 아내도 이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또 한 아이는 아주 못생긴 사내애였다. 웃을 수 없는 웃기는 사실은, 예쁜 여자애 김태희는 삼백만 원이고, 못생긴 사내애는 백만 원이란 것이다. 사람도 강아지도 예쁘거나 잘생긴 아이가 비싸다. 게다가 김태희는 여자애인지라 새끼를 낳을 수도 있으니 뭐 이해되기도 한다.
치와와계의 김태희를 데려오려고 했다. 아내도 원했고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너무 일찍 떠난 시추 별이가 너무 예뻐서 아내는 시추계의 김태희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젠 치와와계의 김태희를 만난 거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견사를 힘들게 찾아가 사장, 그러니까 주인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치와와 브리더가 되었냐고 물었고, 사장은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말한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완전히 망했다고. 한국에 돌아와 1년 동안 집 밖에 나간 적도 없다고. 그러다가 그저 자신을 위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게 됐는데 그게 장모치와와였단다. 강아지 밥을 사느라 1년 만에 처음 마트에도 갔고, 산책을 시키느라 1년 만에 처음 밖에 나가 걷기도 했단다. 그렇게 강아지가 자신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단다. 그래서 한 아이를 더 키우게 됐고 그러다가 장모치와와를 기르고 분양하는 게 자신의 일이 됐단다. 치와와가 저를 살린 거죠.
처음 생각했던 김태희를 포기하고 못생긴 사내아이를 데려왔다. 그 아이가 장군이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너무 일찍 아프고 죽어서, 제발 아프지 말고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일초의 고민도 없이 장군이라고 명명했다. 장군이를 택한 건 김태희보다 몸값이 1/3 싸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장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장모치와와에 대해 많이 알게 된 탓이다. 치와와는 가장 작은 종의 강아지다. 그래서 출산도 쉽지 않단다. 물론 마취도 더 위험이 크고. 아기를 낳아도 어렵고 중성화 수술을 해도 다른 강아지들이나 사내보다는 어렵단다. 물론 모든 건 확률 문제다. 중성화 수술이나 출산을 하는 중에 항상 사고가 나고 죽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이 작은 아이에게 결국 그렇게 힘든 일을 겪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물론 내가 포기해도 김태희는 누군가가 데려갈 것이고 그럼 중성화 수술을 하거나 새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런 힘든 일을 겪게 하는 게 내가 아니기를 선택한 거다. 그래서 출산의 고통을 겪을 일도 없고 중성화수술도 간단한 사내놈 장군이를 데려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가 데려오지 않으면, 어쩌면 못생겨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효과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장군이는 차멀미를 했다. 지금이 그럴 때라고 말한 사장 말이 맞았다. 침을 엄청나게 흘린다. 휴게소에 멈춰 장군에게 물을 먹이려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에 있던 엄마와 딸이 장군이를 보고 말한다. 아이고 귀엽네. 그런데 화났어? 장군이는 입꼬리가 쳐저서 가만있어도 화난 표정이다. 사람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장군이는 억울하다. 화난 게 아닌데. 그냥 그렇게 생겼을 뿐이라고. 그래서 몸값도 김태희의 1/3이었다고.
다행히 보리와 타샤는 잘 논다. 보리가 블루의 기억을 잊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만 기우. 아니, 기억하겠지만 귀여운 동생이 생겨 좋아한다. 사내 형제답게 보리와 장군이는 치고받고 씨름하는 게 노는 거다. 당연히 보리가 한 체급 높지만 보리는 절대 장군이를 물지 않는다. 그저 무는 척 서로 장난치는 거다. 장군이는 형의 배려를 알아 겁 없이 달려들며 장난을 건다. 하루에 몇 번씩 두 아이가 온 집안을 뛰어다니면서 노는 걸 보는 게 행복하다.
장군이는 치명적인 애교쟁이다. 놀 때는 보리지만 쉬거나 잘 때는 꼭 타샤 옆이다. 홀로 있는 걸 좋아하는 타샤는 처음에는 귀찮아하기도 했지만 결국 장군이의 애교에 넘어가 옆구리도 내어주고 등도 내어준다. 장군이 애교의 끝은 결국 나다. 느닷없이 달려들어 눈 코 입 귀를 마구 핥아댈지라면 그 행복이란.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책을 보려 하면 장군이가 자기를 올려달라고 난리블루스다. 그리고 내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는 잠이 든다. 그럼 나는 아주 불편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그것이 너무 힘들면 인터넷 바둑을 두고, 그것도 힘들 땐 나도 같이 잠을 청한다. 다리가 저려도 오줌이 마려워도 난 꼼짝할 수 없다. 장군이가 깨면 안되니까. 장군이는 내게 행복이다.
지금 내게는 장군이가 제일 소중하다. 의젓한 첫째 타샤보다, 나를 너무 좋아하는 보리보다, 쉴 새 없이 사고 치고 나를 사랑한다고 애교 부리는 장군이가 제일 좋다. 느닷없이 장군이가 없으면 내가 살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불가하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장군이가 아플까 봐, 갑자기 나를 떠날까 봐. 오늘도 내 무릎에서 잠든 장군이에게 말한다. 스무 살까지만 살아다오. 아빠하고 같이 죽자. 우린 운명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