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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May 21. 2023

어젯밤 꿈은 조금 슬펐다. 슬픔의 이유는 외로움으로 인한 두려움이었다. 꿈에서 외롭거나 슬프다는 감정을 느낀 경험이 낯설다. 안타까움, 분노, 공포 따위의 부정적인 꿈들은 빈번했지만, 외로움과 슬픔이라니. 현실에서의 포장과 버텨냄이 풀어져버린 건가.


외국의 어떤 공항이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난 혼자다. 여기 왜 왔는지도 알 수 없으니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도 없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늘 그렇듯이 꿈에서는 결코 전화를 걸 수 없다. 전화를 걸려고 안타깝게 애쓰고 애쓸 뿐이다.


공항에서 나왔을 땐 길은 번화했고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걸어갈수록  점점 사람들이 사라지고 거리는 폐허같이 변했고 결국 길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조금은 겁도 났다. 묵을 호텔도 모르고 연락할 사람도 없다. 그럼 오늘은 어디서 잔다는 말인가. 계속 걸어도 사람도 번화한 길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러다 결국 길 가에 담요 한 장을 펴서 누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자 갑자기 너무 외롭고 슬펐다. 사실은 두려웠다.


가끔 버티기 힘든 공포가 몰려올 때가 있는데 그건 상투적으로 말하는 고독, 외로움, 고립 그 따위 것들 때문이다. 감정을 증폭하여 드러냄을 극히 싫어하여 징징거리는 자들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그러니 나는 징징거릴 수 없다. 그러니 나의 징징거릴 감정들은 계속 가슴에 누적되었고 그것이 폐와 식도와 심장을 점령하면 어쩔 수 없다. 숨을 잘 쉴 수 없고 심장 박동이 급속히 빨라지며 급격히 공포가 몰려오는 거다. 그럼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음악을 틀고 집 안을 돌아다니고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나 혼자가 아님을 강력히 항의하는 수밖에 없다. 효과는 있다.


그러나, 꿈은 내 뜻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니 꿈속의 외로움과 공포는 더 끔찍하다. 벗어날 방법이 없다. 꿈이 끝날 때까지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데 꿈은 어두움이니 두려움이 더 크다. 언젠가 꿈은 끝날 것이 다행이나 꿈에선 그 사실조차 모른다.


행복한 꿈이 있었던가.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신나 하고 그런 꿈을 꾸고 싶다. 그러고 보니 그런 꿈은 없었던 것 같다. 늘 꿈은 안타깝고 힘들고 무섭다. 내 삶이 그러니 꿈이 그런 거겠지. 꿈은 반대라지만 그럼 내 삶이 너무 행복한 것이어야 하지만, 아니다. 꿈에서라도 신나게 웃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원하는 꿈을 만들어주는 약이 있어야 한다. 그럼 모두가 행복해질 거다.


몇 가지 반복되는 꿈들이 있다. 어느 곳에 가야 하지만 가도 가도 그 건물이 나타나지 않는다. 찾아가는 길이 너무 멀고 힘들다. 그러니 밤새 걷고 또 걷고 안타까워하면서 잠이 끝나면 몸이 물 젖은 담요 같다.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핸드폰은 이상한 화면만 반복되고 아무리 해도 전화번호를 찾을 수 없다. 역시 밤새 전화를 걸어보려고 애쓰다가 잠이 끝나고 그럼 마음이 무겁다. 젊은 시절 꿈에서 수학문제를 풀고 풀다가 잠이 깨는 것과는 다르다. 답답하고 힘들고 슬프고 두려웠던가.


생각해 보면 꿈을 꾸면서 우는 일들은 종종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사랑하는 부모나 강아지가 죽은 꿈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 귀신 꿈이라면 무서울 거다. 그런데, 너무 외로워서 두렵고 슬픈 꿈을 꾸기도 하는 건지. 그렇겠지. 나보다 더 고독한 이들은 세상이 넘쳐 날 것이니까. 내가 착하게 살았다면, 그때 누군가 나타나 날 위로해 줄 것인데, 그런 적은 없다. 고립과 고독은 내 삶이고 그러 가끔 그것이 갑작스레 공포로 찾아오면 그저 버텨내야 할 뿐이다. 현실이 더 힘들까 꿈이 더 힘들까.  둘 다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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