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동섭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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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길어진 설 연휴로 마음이 바쁘다.
핸드폰에 그동안 생각난 대로 적어둔 메모장을 열었다. 한산했던 재래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서로 떠밀려 다닐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라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물가는 올라서 서민들 시장보기 무섭다고 매스컴에서 떠들지만 재래시장은 모처럼 활기를 찾는 것 같다.
떠밀리다시피 겨우 단골로 다닌 정육점을 찾았다. 명절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비찜이다.
떡국 끓일 쇠고기와 돼지갈비를 샀다. 오색 전에 함께 넣을 쪽파를 사려고 했지만 너무 가늘어서 꼬지 꿰는 게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 미리 사다 놓은 햄과 단무지 맛살 우엉으로 사색 전 부치기로 했다. 부드러워서 손녀딸이 잘 먹은 명태포 사고 잡채에 넣을 시금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 음식은 간단한 게 없다. 돼지갈비 찜 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배, 양파 믹서기에 갈고 주머니에 넣어 즙을 짜냈다. 돼지 생 갈비는 잠깐 핏물 빼고 난 후 끓은 물에 데쳐냈다. 그리고 압력솥에 삶았다. 삶아진 후에 양념해 놓은 양념장을 넣고 끓이다가 당근과 무 넣고 한 번 더 푹 끓였다. 전은 며느리와 딸이 꼬지에 꿰고 함께 부쳤다. 잡채 준비 하고 있는데 며느리가 전을 다 부친 후에 여기저기 살피고 다닌다. 어수선하게 어지러 진 부엌 서랍장을 며느리에게 들켰다. 추진력이 있는 며느리는 팔을 거두어 부쳤다. 서랍장에 질서 없이 놓아둔 도마와 접시등 순서대로 정리해 주었다. 예쁜 쟁반 하나 놓아두고 잡다한 물건은 감쪽같이 칸을 나누어서 품목별로 정리해 놓았다. 깨끗하게 정리되었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모를 일이다.
음식 하다 보면 사용하기 편리하게 양푼, 소쿠리도 나오기 마련이다. 점점 며느리와 가까운 한 가족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갓 결혼한 후 며느리가 오는 날은 청소하기 바빴다. 실내 자전거위에 어수선하게 걸어둔 외투부터 치웠다. 거실바닥에 뒹구는 쿠션도 치우고 식탁 위에 어질러진 책과 노트도 정리하고 깨끗한 척 애를 썼다. 며느리도 나의 의중을 알았는지 일하는 것도 힘든 데 있는 그대로 두라고 한다.
점점 며느리가 오는 횟수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니 편하게 되었다 손녀딸은 가족들이 많이 모여서 좋은지 이방 저 방 뛰어다닌다. 다행히 갈비찜도 부드럽게 간도 맞고 맛있게 되었다. 잡채도 기름기가 적당해서 느끼하지 않아 좋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미리 설 전날 음식 차려서 나물 몇 가지 곁들여서 함께 먹었다. 다행히 식구들이 잘 먹어주니 마음이 뿌듯했다. 이런 맛에 음식 하나 보다.
설날 간단하게 아침 먹고 가족 예배 드렸다. 누가복음 5장 말씀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새 부대가 되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고정관념은 무엇인지” 서로 나누었다. 우리 가족은 항상 명절이 되면 그날 본문 말씀으로 가족예배 드리고 서로 나눔 한다. 자연스럽게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힘든 문제를 서로 나눈 후 기도하며 마무리한다. 올해는 특별한 설날이다. 십 구 개 월 된 손 녀 딸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가끔 벗으려고 했지만 며느리가 어르고 달래서 밑에 층에 사는 언니 집까지 내려가서 세배드리고 왔다. 언니네 손녀, 손자들도 우르르 몰려왔다. 벌써 서른 가까이 되는 손자,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들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설날이 되면 손자 손녀들 기둥에 세워두고 키 재기를 했다고 한다. 다음 해 얼마나 자랐는지 그 기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요즘처럼 건강검진이나 키 재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 기둥에 대고 금을 그어두지 않았을까? 나도 다음 설에는 우리 자라나는 손자, 손녀들에게 공부 잘해라 어느 대학 갔나? 묻고 안달하기보다 편한 할머니로 기억되고 싶다.
요즘 집집마다 설도 간소하게 보낸다고 한다. 언니와 우리는 위아래층 살고 있어서 특별한 명절을 보낸다. 앞으로 몇 번이나 왁자지껄한 설날을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행이나 집 가까운 곳에 모여 한 끼 식사로 끝 낼 수도 있지만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음식을 차려 주고 나니 뿌듯하다. 결혼한 자녀들과 모처럼 한 상에 둘러서 푸짐한 밥상 차려먹으니 비록 몸은 힘들어도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 찼다.
'설’이라는 단어는 ‘낯설다’의 ‘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므로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또 ‘시작’을 의미하는 ‘설’로 새로운 해의 첫날이라는 뜻에서 ‘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설날은 단순한 새해 첫날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조상을 기리고, 웃어른께 세배하며 덕담을 나누는 날이 더 맞은 것 같다. 또 떡국을 먹으며 한 살 더 먹는 풍습도 있다.
떡국은 한자어로 나이를 더해주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첨 세 병"이라고 한다.
하얀색의 떡과 맑은 국물로 떡을 끓이는 이유는 안 좋았던 일을 하얗게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가래떡이 긴 것처럼 오래오래 장수하라는 뜻도 담겨있다고 한다. 요즘은 다 미리 썰어놓은 떡국을 사서 먹는다. 옛날에는 방앗간에서 가래떡 빼고 꾸덕꾸덕 굳어지면 그때 칼끝으로 떡국을 썰었다. 그 모양이 엽전 모양과 비슷했다. 재산도 불어나고 풍족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떡국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다. 그러니 떡국 드시면서까지 재산이 불어나 부자 되어 배불리 먹길 바랐다.
떡국 그릇이 쌓인 만큼 나이가 들었다. 잔소리 보다 아랫사람들에게 편하고 지혜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게 새해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