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by 진주

그림 : 이동섭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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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한 시장통에서 시작된 설 준비

갑자기 길어진 설 연휴 덕분에 마음부터 바빠졌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목록을 들고 찾은 재래시장은 발 디딜 틈 없는 인산인해였다. 매스컴에서는 고물가와 정치적 혼란으로 서민 경제가 어렵다 아우성이지만, 이곳 시장만큼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비찜용 돼지갈비와 떡국 고기를 사고, 시금치와 명태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원래는 오색 전을 부치려 했으나 시장의 쪽파가 너무 가늘어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미리 사둔 햄과 단무지, 맛살, 우엉을 넣어 '사색 전'을 부치기로 했다. 명태 전은 손녀딸이 잘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즐겁다.

며느리와의 거리, 서랍장 속에서 좁혀지다

한국 음식은 무엇 하나 손 안 가는 게 없다. 돼지갈비를 데쳐내고, 배와 양파를 갈아 즙을 짜고, 압력솥에 푹 삶아 당근과 무를 넣어 다시 한번 끓여냈다. 그사이 며느리와 딸은 나란히 앉아 꼬지를 꿰고 전을 부쳤다.

음식을 하느라 어수선해진 부엌, 며느리가 팔을 걷어붙이고 서랍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추진력 있는 며느리의 손길이 닿자 무질서하게 놓여있던 도마와 접시들이 품목별로 제 자리를 찾았다. 깨끗해진 서랍을 보며 '시간이 지나면 또 엉망이 되겠지' 싶으면서도, 나를 도와주려는 그 마음이 고마워 웃음이 났다.

처음 며느리가 올 때는 집안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실내 자전거 위의 외투를 치우고 식탁 위 책들을 정리하느라 애를 썼다. 하지만 "일하는 것도 힘드신데 그냥 두시라"는 며느리의 진심 섞인 한마디에 이제는 서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진짜 가족'이 된 기분이다.

새 부대에 담는 고정관념과 소망

설날 아침,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누가복음 5장 37-38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새 부대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고정관념'에 대해 나누었다.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고 기도하며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우리 가족의 가장 귀한 전통이다.

올해 설날은 유독 특별하다. 십구 개월 된 손녀딸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가끔 벗으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며느리가 어르고 달래 밑에 층에 사는 언니 집까지 내려가 세배를 드리고 왔다.

아장아장 걷는 손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 설날 풍경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의 우리도 설빔을 입고 복주머니를 돌리며 대문을 나섰다. 새 돔 상동 할머니 댁에 세배를 가던 그 길, 찬바람에 코끝은 시려도 색동저고리에 다홍치마 입고 복주머니 돌리며 가는 마음만은 설레어 붕 떠 있던 그 길이 내 기억 속에 가장 따뜻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언니네 집에는 벌써 서른 가까이 되는 손자부터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북적이는 조카들 틈에서 문득 안방 선반 밑에 나란히 서서 키를 재던 오빠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선반에 머리가 닿지 않아 껑충했던 큰오빠, 겨우 닿아 기뻐하던 둘째 오빠, 그리고 선반을 머리로 들어 올릴 기세였던 셋째 오빠까지. 키가 제일 작았던 큰오빠가 멋쩍은 듯 쑥스럽게 웃던 그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옛 어른들은 설날이 되면 아이들을 기둥에 세워두고 키를 재서 금을 그어 두었다고 한다. 요즘처럼 건강검진을 할 기회는 없었어도, 1년 뒤 다시 그 기둥 앞에 섰을 때 작년의 금보다 훌쩍 자라난 아이를 보며 대견해하셨을 게다.

나 역시 다음 설에는 자라나는 손자 손녀들에게 "공부 잘해라", "어느 대학 갔니?" 묻고 안달하기보다, 그저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편안한 할머니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상동 할머니 댁으로 향하던 길처럼,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도 나를 만나러 오는 길이 설레고 따뜻한 기억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리라(눅 5:38). > 올 한 해, 낡은 고집은 버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넉넉한 새 부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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