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와 크리스마스

모든 재앙이 Pass over 되기를 기도합니다!

by 진주


12월 22일 동짓날이다.

옛날에는 큰 가마솥에 동지죽을 끓였다. 할머니께서 여기저기 다니시며 집안에 나쁜 기운을 막는 일종의 뱅이 의식으로 팥죽을 곳곳에 뿌려놓으셨다.

팥을 푹 삶아 거르고 방앗간에서 빻아온 멥쌀가루는 쟁반에 흰 눈처럼 뿌려놓았다.

곱게 빻은 찹쌀가루에 맵쌀가루는 조금 적게 넣어 뜨거운 물로 익 반죽하고 새 알시 미는 똥굴 똥굴 빚어서 멥쌀가루 위에 굴러놓았다. 팥물은 타지 않도록 큰 나무 주걱으로 위아래를 저어 주다 팔팔 끓어오를 때 새알시미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이때 멥쌀가루도 적당히 넣고 죽의 농도와 간을 맞추고 살살 저어주면 메추리알처럼 매끈한 새알시미가 팥물을 헤치고 동동 떠올랐다.




도시로 유학 간 오빠들이 방학 때 와서 먹을 동지 죽은 어지간한 옴 베기에 퍼서 따로 뒤꼍 마루에 옮겨놓았다. 부엌문만 밀치고 들어서면 수시로 떠먹을 수 있도록 큰 옴 베기에 퍼놓은 동지 죽은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며칠 동안은 우리들의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동네 한가운데 흐르는 냇가에 얼음이 꽁꽁 얼었다. 오빠는 굴러다니는 나무판자로 스케이트를 만들어서 굵은 철사를 맨 밑바닥에 박아 넣었다. 오빠 몰래 신나게 스케이트를 탔다.

손발이 꽁꽁 언 채로 집에 들어서면 부엌문부터 열어젖혔다. 얼어있는 동지죽 한 대접 퍼서 화롯불에서 위아래 저어가며 데워지기 전에 다 먹어 치웠다. 아직도 녹지 않은 새 알시 미는 한쪽은 뜨끈하고 한쪽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맛이 더 좋았다.




유년 시절에는 전기도 보급되지 않았던 산골짜기 동네에 유교문화가 지배했던 시절이라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그 흔한 징글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성장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12월 초부터 서점마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주렁주렁 걸리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징글벨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를 골라서 친한 친구들에게 보낸 후에 우체부 아저씨께서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설 때마다 마음이 설레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 줄 알고 결혼했지만 전혀 내 뜻과 상관없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결혼생활로 예수님이 찾아와 주셨다. 유치원을 경영하셨던 올케언니는 해년마다 우리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카스텔라를 넉넉하게 사다 주셨다.

성탄 전날에는 교회 성가대원, 주일학교 교사, 구역장님께서 방문하셔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부를 때면 현관문 열어놓고 내복 차림으로 아이들도 같이 합창을 했다. 미리 준비한 초코파이와 과자를 아이들 몰래 선물 가마니에 넣어 드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합창하며 다 같이 손을 흔들어댔다.




유치원생이 되자 성극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저녁시간에 교회 선생님 손을 잡고 연습하러 교회를 다녀왔다.

직장 다니던 선생님들께서 그때 당시 이십 대 초반으로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그런데 황금 같은 젊은 시절 이타적인 삶으로 교회 학교 아이들을 위해서 간식까지 챙겨주며 연극과 노래를 가르쳤다.

성탄 예배를 마치고 온 아이들의 손에는 양말 속에 산타(?)에게 받은 선물이 빵빵하게 들어있었다. 전 교인들도 예배 마친 후에는 점심으로 육개장에 하얀 쌀밥으로 포식했다.

새벽 특송을 집집마다 다녔던 성가대원들을 위해서 어느 장로님 댁에서는 동지팥죽을 끓여서 섬겨주셨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들려왔다. 일 년 동안 봉사했던 기관에서는 내복, 성경 공부반에서는 개근상으로 성경책을 선물로 받았다. 비록 삶이 고단할지라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넉넉했고, 행복했던 날이었다.

지금도 그때 섬겨주었던 주일학교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자녀들이 연약한 믿음이지만, 주일이 되면 예배드리고 주중에는 소속된 목장에서 일주일 간의 삶을 나누고 있다.




2020년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코로나 19로 T.V앞에서 성탄 예배를 드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은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매스컴에서는 떠들어댔다.

우리들은 가끔 꺼내어 볼 수 있는 추억 창고가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마스크 쓰고 유치원 다니다가 문이 굳게 잠기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되었 그해! 사십 년 가까이 유치원을 경영하고 있는 올케언니가 가족 카톡방에 영상을 보내주셨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각자 연습한 악기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연주하고 있었다. 깜찍하고 귀엽기만 한 아이들의 모습에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몇 년 전보다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하는 일상이 되었고, 마스크도 각 세대를 불문하고 의례히 써야 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규제가 풀려서 자유롭지만 그래도 회복되지 않는 경기침체로 인한 분위기는 연말연시이지만 들뜬 기분도 없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지난주 예배드리고 딸과 함께 코엑스를 갔더니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누리고 있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도 곳곳에 세워져 있었고 오랜만에 구세군의 종소리를 들으니 반가웠다.




그러나 화려한 트리 속에는 예수님은 계시지 않고 코로나로 힘든 환우들,

가장이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메고 있는 아내,

가정이 깨어지고, 자녀들이 가출하고 경제가 바닥을 쳐서 문만 열어놓고 있는 이웃들의 흐르는

눈물 속에 계실 것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짓날!

대대로 내려온 절기 중 하나로 집안 액을 막고 잡귀를 쫓 위해 빨간 팥으로 끓인 동지죽을 집안 곳곳에 뿌리고 다니셨던 윗 어르신들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제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각 가정의 문설주에 바르며 모든 재앙이 Pass over 되기를 기도한다.


“ 우리 인생 최고의 상담자 모사라 기묘자라 흑암에 있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빛이 되고자 낮고 천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예수님!

“메리 크리스마스”


# 예수님 #새벽송 # 겨울방학 #산타 크로스 # 징글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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