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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꽃 이야기

골목길 화단에 핀 우리 꽃!

by 진주

오래전에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께서 가꾸시던 난을 한 포기 가져왔다.

봄이 되기 전 몽 그리다 주황색으로 핀 이름 모를 '난'이 겨우 내내 칙칙했던 우리 집 거실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그런데 봄이 되니 채송화가 싹이 트고 있었다. 세상에나! 한 포기 '난'을 가져왔는데 덤으로 따라온 것이다. 행여나 자기를 툴툴 털어 버릴까 봐 얼마나 채송화는 마음이 졸였을까. 다행히 '' 옆에 찰싹 붙어있었나 보다. 겨우 내내 잠을 자더니 봄 햇살에 드디어 싹을 틔우고, 벌써 십여 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름만 되면 피고 진다.


그런데 어느 해 설을 맞이해서 고향을 다녀왔더니 ‘난‘ 은 그만 죽고 말았다.

봄이 되기 전 꽃을 품고 몽글거리다 꽃대를 올리고 기어이 예쁜 꽃을 피워내더니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어서 아쉬울 뿐이다.


요즘 오래된 집들을 부수고 빌라나 아파트가 들어서는 동네가 많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도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작은 골목길이 있었다.


밖으로 나온 작은 화단에는 분꽃, 해바라기,

봉선화, 백일홍, 칸나, 국화, 맨드라미 등 제법 화려하지 않지만, 때만 되면 알아서 소박하게 피어난 꽃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런데 그 골목길도 개발 붐이 불어서 몇 채나 되는 집이 큰 포클레인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머나! 저기 꽃들이 많았는데 어떡하면 좋아 얼른 뛰어갔지만 건축 더미 잔해에 깔리고 묻혀서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얼굴까지 가리고 눈만 나온 아저씨께서 주차 봉을 흔들면서 위험하니 빨리 나가라고 했다. 에구! 한발 늦었네 이렇게 빨리 집을 지을 줄 알았으면 진즉 뽑아올걸 한 해 동안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꽃나무들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어느 해 그 골목길을 걷다가 맨드라미 한 폭을 뽑아서 비어있는 화분에 심었다. 그랬더니 해년마다 보살피지 않아도 다른 화분까지 씨가 떨어져서 새싹이 돋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태를 뽐내며 장 닭처럼 벼슬을 빨갛게 올리고 당당하게 서있다.

창가에 꼿꼿하게 피어서 아침마다 가족들을 즐겁게 해 준다. 그 옆에는 채송화가 아직 늦잠을 자느라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

옆에 있는 맨드라미가 빨간 벼슬을 세우고 ‘꼬끼오’ 잠을 깨우면 화들짝 놀라 활짝 피어날 것이다.

봉선화는 씨를 새가 쪼아 먹었는지 새싹이 나오지 않았다.

새싹이 돋고 자랄 때는 비슷해서 봉선화도 있겠지 했더니 온통 맨드라미뿐이어서 올해는 이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도시에는 골목이 하나 둘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높이 솟은 아파트만 도심을 메우고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도 요즘은 더구나 코로나 시기인지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동네도 많은 집들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길도 넓어지고 주변 환경이 깨끗해지니 신발이 더러워질 일도 없다. 작은 골목길이 없어진 동네에도 높은 빌라가 어느새 완공이 되고 분양이 되어 그때 살았던 이웃들은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 세대들과 친했던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달리아도 도심에서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핏빛 정열로 빨갛게 피어나 뜨거운 여름 햇살에도 굴하지 않던 샐비어도 점점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세대들이랑 같은 시대에서 피고 지고 자랐던 소박한 꽃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볼 때에 나도 이 사회 중심에서 물러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흙냄새가 그리워 오늘도 공원에 오른다. 올라가는 길에 어느 담장 밑에 채송화, 봉선화가 피어 있는 것을 보니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안녕! 내년에도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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