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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익어 갑니다

장맛은 역시 우리 메주콩!

by 진주

베란다에서는 봄에 가른 장이 햇볕에 잘 익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가을걷이 끝내고 주로 입동 무렵에 메주를 쑤었다. 하루 종일 콩을 삶느라 나무 청에 있던 솔개 단이 줄지어 내려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에는 콩 익은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십 리 길을 걸어서 오던 터라 배가 고프던 차에 익어가는 콩을 주어 먹는 것도 간식이 되었다. 고추장 담으려고 시루에 쪄놓은 찰밥도 할머니 몰래 한 줌 쥐어서 먹은 맛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진득한 물이 베고 걸쭉하게 잘 익은 콩을 절구통에 붓고 쿵더쿵쿵더쿵 찧기 시작 하면 노란 콩이 으깨어지고 연한 병아리 색이 도는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암반에 잘 찧은 콩을 펼치고 예쁘게 각을 잡고 직사각형으로 메주를 만들었다. 검불은 정리한 깨끗한 볏짚을 방에다 깔고 그 위에 메주를 놓았다. 볏짚은 곰팡이를 번식하는 훌륭한 효모가 들어있다고 해서 청국장을 띄울 때도 꼭 깨끗한 볏짚을 몇 가닥 쑤셔 넣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이 지나면 메주 뜨는 냄새가 집안 가득히 진동을 했다. 그 냄새가 싫어서 짜증도 많이 냈고 언제쯤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집안에서 사라질까 했지만, 겨우내 시렁에 짚으로 매서 매달아 놓은 메주 냄새는 말라도 그 옆을 지나가면 코를 막게 했다.




결혼한 후에도 우리 시어머니는 또 유별나게 메주를 띄우셨다. 우리 새끼들이 먹을 것이라고 불을 때고 메주와 같이 잠을 주무셨다. 한잠 주무시고 일어나셔서 메주를 다독다독 만지시고 이리저리 둘러놓으셨다.

그래야 골고루 메주가 잘 띄워서 맛있는 장과 된장이 만들어진다고 하셨다. 인심 좋으신 이웃분들이 오셔서 두 달이 조금 안 돼서 메주 가르기를 시작하셨다. 그때마다 눈여겨보았으면 좋으련만 된장의 짠맛과 특유한 냄새가 싫어서 장독대 옆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냄새가 그리워진 건 웬일일까? 나이 탓일까?



요즘 마트만 가면 된장과 고추장이 유명한 상표 라벨이 붙어서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수고하지 않아도 카드만 들고 가면 사 올 수 있는 편리함이 있어서 좋지만 우리 집 뒤 안에 있는 장독대에서 햇빛과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내었던 된장 맛과 비교할 수 있을까?

감나무에 연한 잎이 새 주둥이처럼 올라오고 감꽃이 피어 떨어지면 목걸이를 만들어서 목에 걸고 떱떱한 감꽃으로 심심한 입도 달래던 우리 집 뒤꼍 풍경이 아련히 떠오른다. 봄볕으로 장독대를 은근히 달구며 그 속에서 장과 고추장이 익어가고, 감도 점점 커져갔다. 벌레 먹어 떨어진 덜 익은 감을 된장에 찍어서 먹어보기도 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그동안 방앗간이나 시장에 메주덩이가 있어도 관심조차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한번 담궈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스승 삼아 담그려고 하니 라면 끓이기보다 쉽다는 설명이 줄줄이 나와 있었다.

그래도 대 선배인 언니에게 자문을 구했다. 한말 정도 담그면 생수병 2리터 18병 정도에 소금을 6킬로 정도 넣은 후 잘 저어 녹인 다음 계란을 넣은 후 오백 원짜리 정도 크기가 물 밖으로 보이면 염도가 맞는다고 설명을 해주셨다.그러나 정성이 들어가야 되는 것이지 라면보다 쉬운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도 첫 번째 도전 성공했고 50일 후에 장 가르기를 했는데 제법 맛있는 된장이 되어서 여름 내내 된장국을 끓여 먹고, 시래깃국도 잘 끓여서 먹었다. 자신감이 생긴 뒤에는 지금 10년째 장을 담그고 있다.


얼마 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장단 콩을 소개하며 민통선 부근의 마을을 소개한 것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한국전쟁 전까지 황해도 장단군 소속이었기에 장단이란 이름이 붙었고 그곳에서 출하된 콩 이름이다.

장단 콩은 맛과 영양이 뛰어나 조선 시대 임금님께 진상됐고, 우리나라 콩 장려품종으로 파주의 대표 특산물이라고 한다. 장단 콩은 일교차가 큰 기후에 물 빠짐이 좋은 굵은 모래 토양에서 자라 품질이 좋다고 한다.

우리랑 같은 고향에서 살았던 고모 중에 한 분이 그곳으로 시집을 갔다. 올해는 장단 콩으로 쑨 메주를 그 고모를 통해서 구입을 했다. 베란다를 갈 때마다 메주를 이리저리 살피고 냄새도 맡아보며 고향 시렁에 매달았던 메주 냄새를 생각해 본다.


옛날 부모님들처럼 콩을 직접 농사짓고 말려서 콩을 쑤고 띄워서 만들어낸 메주로 만든 된장과 장맛에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정성 어린 장맛으로 우리들을 길러내신 그 맛을 음미하며, 유명하다는 장단 콩으로 쑨 메주로 장을 담았다. 씨간장을 넣었더니 벌써 까맣게 윤기가 돌고 맛을 보면 단맛이 돈다.

올해도 장 담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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