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서 감자칩 먹기

내가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

by 심심한 사람

머릿속에 하고 싶은 충동은 있지만 평상시 성격상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 도넛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입에 잔뜩 묻히며 와구와구 먹는 일,

새 하얀 침대 위에서 부스러지는 과자를 먹는 상상을 해본다.

이것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이런 욕구가 분명히 존재한다.




요 근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다.

서울에서 제주, 도쿄, 후쿠오카,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항공권을 검색했다.

갑자기 떠나고 싶은 충동이다 보니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가까운 곳을 생각하게 되었다.

검색을 하다가 여행에서 필요한 렌터카, 유심, 교통수단, 환전, 숙소를 떠올리며 귀찮아진 마음에 검색하기를 그만두고 휴대폰을 소파 위로 집어던졌다.

이렇게 훅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편한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다 나는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라 아마 그것도 잠시일 것 같다며 상상하기를 그만두고 차 한 잔을 내려왔다.


따듯한 차 한잔을 마시며 내가 왜 여행을 가고 싶은지 생각했다.

나에게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얕은 강박이 있었다.

가방에 교과서를 챙길 때 시간표 순서에 맞게 열을 맞춰 정리했다.

연필은 늘 뾰족하게 깎아서 다른 것들과 길이를 맞춰야 마음에 들었다.

서랍장에 책은 늘 순서대로 높이가 일정하게 꽂혀있어야 했고 책상 위는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해야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충동은 뾰족한 연필을 있는 힘껏 힘줘 부러뜨리고 싶었고 책상 위에 진하고 두꺼운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어떤 충동을 늘 제어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 같은 것 말이다.

허벅지가 깊게 파인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뛰는 것, 브라 없이 나시만 있고 커피를 사러 가는 일, 잔디 위에서 누가 더 빠르게 구르나 시합하며 몸을 던지는 도전, 석양이 지는 바다가 아름다워서 청바지가 젖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들어가는 용기, 몸무게 신경 쓰지 않고 밤새 마시는 와인, 지나가는 행인에게 웃으며 그 나라 말로 인사하는 친절, 다리가 아프다고 아무 데나 앉을 수 있는 비위생적인 것들을 여행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도 모르게 배우며 스스로 만들었던 규율에서 벗어나는 짓(?)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행이었나 보다.

일상에서의 나는 나를 억누르는 수많은 제어장치와 이것을 단번에 끊어내고 싶은 충동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한쪽에 나다움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편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본능, 본성이라는 직관적인 단어로 쉽게 설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동전의 양면같이 언제나 내 삶에 붙어있는 그런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생각한 것은 이것이었다. 새 하얀 침대 위에서 부스러지는 감자칩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짠 양념이 가득 묻은 손으로 옆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둔 와인잔을 잡아 마시며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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