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넘다

영화 <앙>을 다시 봤던 밤의 생각

by 심심한 사람

잠이 쉽게 오지 않는 밤에는 잔잔한 일본 영화를 찾곤 한다.

<앙>은 이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인데 오랜만에 다시금 생각이 났다.

내 기억 속에 이 영화는 도라야키 속 앙꼬(팥)를 할머니가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모습이었다.


도쿠에 할머니는 작은 도라야키 가게에서 알바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계속 센타로 사장에게 거절된다.

하지만 센타로는 한 번 맛보라고 건네고 간 도쿠에 할머니의 팥을 먹어본 뒤 함께 일하기로 한다.


도쿠에 할머니는 오그라든 손으로 이른 새벽부터 가게에 나와 팥이 지나온 과정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정성껏 단팥을 만든다. 금세 도라야키는 입소문이 나서 인기가 많아졌고 어떤 날에는 지친 사장을 대신해 할머니가 직접 장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계절이 지나 쌀쌀해지자 오히려 잘 팔릴 줄 알았던 도라야키 가게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할머니의 굽은 손가락이 나병 때문이라는 사실이 소문이 났던 것이다.


소문의 진상은 바로 도라야키 가게의 단골이었던 학생 와카나였다. 가난하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엄마와 함께 사는 와카나는 할머니의 병에 대해 딱 한 사람, 자신의 엄마에게만 말했으나 순식간에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와카나는 자신이 키우던 새를 들고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센타로 사장과 함께 할머니에게 온 편지의 주소로 찾아간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의문이 들 만큼 끝없이 이어져 있는 대나무 숲을 지나 도쿠에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나병, 한센병, 문둥병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질병은 코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손과 발이 썩어 문드러지는 모습에 사람들은 무서웠는지 그들을 한 데 모아 격리시켰다. 뿐만 아니라 같은 질병이 대물림될 것이라는 오해에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녀도 강제로 갖지 못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 의학이 발달해 많은 오해가 사라졌고 격리가 해제되었음에도 여전히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도쿠에 할머니는 죽기 전에 센타로 사장에게 육성으로 편지를 녹음해 남긴다.

그 편지에는 처음 만났던 센타로 사장의 눈이 열여섯에 아무리 노력해도 저 담장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자신의 눈과 닮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는 내용이었다.


센타로 사장은 실수로 싸움을 말리던 중에 사람을 죽여서 감옥에 갔던 과거가 있다. 그때 어머니는 자신의 출소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자신의 합의금을 대신 내준 전 도라야키 사장을 대신해 가게를 이어받아 평생의 빚을 갚고 있었던 것이다. 센타로 사장은 출소 이후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 없이 작은 도라야키 가게를 자신의 감옥 삼아 평생의 형벌을 받기로 다짐한 듯 표정 하나 없이 의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도쿠에 할머니는 평생 담장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열여섯 자신의 눈과 닮았다고 말한 것이다.


어릴 적에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주변에서 말해주었다. 하지만 커갈수록 현실이 알려주는 것은 내가 절대 넘을 수 없는 담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N포, 욜로, 금수저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 역시 이름만 달리 불렸지 결국 자신이 평생에 넘을 수 없는 담장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센타로 사장은 도쿠에 할머니의 유언 테이프를 듣고 자신의 감옥에서 나오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영화는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에서 큰 소리로 "도라야키 사세요, 도라야키"라고 외치며 자신만의 도라야키를 팔고 있는 사장의 모습으로 끝난다.


나에게 있어 담장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있어 오랜 시간 괴롭혔던 것은 바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 평가였다.

내가 나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고 계속 담장 안에 나를 가뒀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회에서 말하는 나이별, 시기별 과제를 해내야 했다. 빽빽한 대나무 숲처럼 내 주변의 사람들의 수많은 기준들에 나를 맞추고 그들이 말하는 '정상'이라는 범주 안에 들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그것이 나의 삶이라고 여기며 누군가가 나쁘게 말한 평가에 마음이 무너졌다.

어쩌다 주어진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에는 나를 죽이며 비굴하게 배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나의 담장은 내가 스스로 용기 있게 나와야 했다.

도쿠에 할머니가 예쁜 모자를 쓰고 사람들이 많은 시내의 도라야키 가게에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센타로 사장이 작은 가게를 박차고 나와 수레를 끌고 공원으로 향했던 것처럼 말이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나에게 끝없는 과제를 이야기할 것이고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면 차별할 것이다.

나쁜 평가는 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의 기준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해야 한다. 때론 빽빽한 대나무 숲이 너무 길어 길을 잃어버리고 돌아오는 날이 있을지라도 내가 결국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잊어버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담장 뒤에 무기력했던 자신과 닮은 눈을 발견하면 함께 나가자고 손 내밀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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