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찾아오는 괴물

잠이 오지 않는 밤

by 심심한 사람

언제부터였을까 꽤나 자주 침대에서 뒤척이는 시간이 잦아졌다.

놓아주지 못한 과거가 나를 찾아와 말을 건다.


사무실에서 자기 분에 못 이겨 나한테 소리 지르던 부장의 얼굴과 목소리

일부러 더 못된 말로 나를 무너뜨리려 했던 그녀의 말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던 바보 같은 나의 모습


순간을 모면하려고 그냥 뱉어낸 말실수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


셀 수 없이 많은 과거가 떨쳐내고 싶어도 머릿속 뉴런 사이사이마다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지 씻겨지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밤의 괴물이라 부른다.

밤의 괴물은 나를 계속 괴로운 과거의 순간으로 낚아 채 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냥 그 순간으로 또다시 가고 가고 가서 원하는 말과 행동을 생각해 낼 때까지 반복한다.

끝없는 테이크의 반복으로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갇힌다.


반복되는 장면을 떠올리며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숨 죽이고 있었던 수치심과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한 창피함, 곡해된 나의 의도로 인한 억울함 그리고 상대에 대한 분노와 저주가 치솟았다.

밤의 괴물에게 잡히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존재를 까먹게 된다.

과거의 깊은 골짜기에 빠져서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창 밖이 밝아오고 끝없이 날아오는 주먹에 맞아 녹다운이 되어버린 링 위의 선수처첨 심판의 카운트 세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기절해 버린다.

'내가 밤의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괴롭게 눈을 뜬 아침 생각해 본다.

괴물의 먹이는 놓아주지 못한 나의 기억들이다.


최근에 뇌과학자의 정리, 정돈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어지럽혀진 공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위협과 공포로 뇌가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머릿속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기억, 감정의 영역 역시 잘 정리하지 못하면 위협과 공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용서'라는 단어가 참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의 머릿속을 정리하는 청소라고 생각해 보자.


나를 무너뜨리려 했던 상대의 말을 지우고,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무관심을 털어내고, 내가 나를 지키지 못했던 어린 날을 서랍에 정리해 넣는 것이다.

깨끗해진 방에 더 큰 애정이 생기듯 나의 과거를 잘 용서해 주면 지금의 내가 더 빛날 것이다.


낡아빠진 불쾌한 곰팡이 기억을 먹고사는 밤의 괴물이 오늘 찾아온다면 락스를 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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