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서 골프 치기
지난 화요일 새벽, 콜벤을 불러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아직 면세점도 다 열지 않은 시간에 커피로 잠을 깨우며 비행기에 올랐다.
삿포로 공항 도착
30분 정도 연착된 비행기 덕분에 편의점 들릴 시간도 없이 식사도 거르고 골프장으로 갔다.
동반자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우리 밥 먹을 시간 있어?"였다.
첫날은 도착하자마자 북해도 GC(이글코스)에 갔다.
일본 골프장은 대부분 노캐디로 라운딩을 해서 거리 측정기와 볼 닦는 손수건을 허리에 매달았다.
완만하고 너른 평지에서 샷을 하니 피곤함도 잊고 신나게 볼을 날렸다.
그래도 캐디 없이 골프 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카트도 직접 운전해야 하고 클럽을 잘못 들고 가면 다시 오가기가 힘들어 연습해 본 적도 없는 컨트롤 샷을 쳤다. 그린 위에서 라이를 봐줄 사람이 없으니 땡그랑 듣기가 이리도 어려울까 싶었다.
기진맥진 라운딩을 끝내고 나니 버스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입에서 단내가 났지만 후다닥 캐디백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삿포로 시내 한가운데 있었다.
라운딩이 끝난 뒤에 관광을 하기 좋은 위치인 것은 확실하다.
호텔에서 저녁으로 가이세키를 먹고 편의점에 들러 간단하게 산 야식을 먹으며 첫날의 회포를 풀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는 완벽한 올빼미 형 인간이라 평소에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 1부는 기피하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1부를 쳐야 뒤에 관광하고 온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매일 미라클 모닝을 했다.
둘째 날은 썬파크 CC(서> 남코스)였다.
세 개의 구장 중에 잔디 상태가 가장 좋아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카트에 개인별로 선풍기도 달려 있어서 시원하게 라운딩을 즐기며 중간중간 나타나는 귀여운 동물 친구들과 예쁜 무지개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쁜 풍경과 다르게 나의 동반자는 화가 나 있었다.
계속 드라이버가 맞지 않아서 심통이 났는지 짜증을 내며 우리를 눈치 보게 만드는 것이다.
'골프를 쳐 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 역시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 같았다.
골프가 힘든 것이 아니라 눈치를 보면서 내가 잘 맞아도 좋아하는 티도 못 내는 시간이 힘들었다.
호텔에서 온천을 하고 저녁으로 칭기즈칸을 먹으러 갔다.
가게를 찾는데 평일 밤에도 예약 없이 먹을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어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모른다.
세네 번의 실패 후 자리에 드디어 앉아 먹을 수 있었다.
체력도 약하고 스코어도 100개를 훌쩍 넘겨 화가 난 동반자와 그의 배우자가 옆방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둘째 날의 밤도 지나갔다.
셋째 날은 서양식 아침을 여유롭게 먹고 테이네 CC로 향했다.
산 위에 지어진 골프장이라 그런지 한국 골프장과 비슷한 느낌의 언둘레이션을 자랑했다.
그래도 정말 풍경이 역대급으로 멋졌는데,
삿포로 시내를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며 라운딩 하는 기분이라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내년에는 마음 맞는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후지산을 배경으로 라운딩 하고 싶다는 계획을 세우며 기분 끝내주게 라운딩을 잘 마쳤다.
그리고 시간도 넉넉하게 남아 클럽하우스에서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는 카이센동과 각종 해산물을 배불리 먹고 마지막 날의 밤을 관광으로 가득 채웠다.
니카 위스키 전광판 앞에서 인증샷도 찍고 옷가게, 잡화점, 바디용품 그리고 메가 돈키호테까지 알뜰살뜰 남은 시간 다리가 아플 정도로 관광을 하고 온천을 즐겼다.
골프 여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골프 리조트에서 매일 최소 27홀(18+9) 라운딩을 하는 것과
매일 18홀 라운딩을 하면서 골프장과는 거리가 좀 있어도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관광을 같이 즐기는 방법이 있다.
둘 다 장단점이 확실하게 있는데 생각보다 이동하는 동안 시간과 체력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컨디션을 잘 관리해 골프에 여유롭게 집중하고 싶다면 전자의 여행이 알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일 것이다.
매일 미라클 모닝 골프를 치면서 가장 많이 배운 점은 컨디션 못지않게 기분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이 골프 치는 마지막 날이 아니라 앞으로 칠 날이 더 많은데 바로 직전에 양파를 한 것이 그렇게 속상할 일은 아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나간 것은 흘려보내고 마음을 다잡아 앞으로의 샷들을 준비하는 것이 골프이다.
아,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에이밍 했다면 믿고 그 방향대로 쳐야 한다.
나 자신을 믿고 자신 있게 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