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화 감정의 향방

다육이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의 끝

by 은송하

다육이의 영양 번식에 감동한 나머지 나는 이것저것 시도했다. 당근의 밑동을 잘라 물에 넣어 놓았다. 주황빛 양분에서 흰 수염뿌리와 연두색 줄기가 올라왔다. 잎과 줄기를 따다가 입에 무니 당근 향이 잎 안에 퍼지면서 쌉싸름한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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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학원의 강의실에 놓고 학생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학생들은 잎에서 당근 향이 나는 게 신기했는지 달콤한 편의점 간식 대신에 당근 잎을 따먹곤 했다. 가르치는 과목이 과학이다 보니 이런 현상에 과잉 감탄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편이다.


곱슬 버들 나뭇가지를 사다가 물에 넣어놓았다. 마른 가지에서 뿌리와 잎, 곧 노랑 송송이 꽃을 피웠다. 줄기가 초록빛으로 변하면서 야물어졌다. 영양 덩어리에서 하나의 생명체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아직 각 기관으로 분화되지 않은 미분화 줄기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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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줄기세포들은 시기와 환경이 맞으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분화된다. 우리는 배아 줄기세포라는 미분화된 세포들이 적당한 때의 신호를 따라 각 기관으로 분화됨으로써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 뼛속 골수에서 조혈모세포들은 신호에 따라 어떤 세포는 적혈구로 어떤 세포는 면역과 관련된 백혈구로 분화가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결정된 것이 없다. 환경과 신호가 맞아떨어져야 무엇이 될지 또렷해진다.




나의 원가정은 식구가 많았다. 조부모님과 형제 중 첫째이신 아버지 밑으로 고모가 넷이었고, 내 밑으로 남동생이 둘이었다. 고모가 한 명씩 시집을 가면서야 식구가 줄었다. 밥상 두 개를 부엌에서 마루로 옮기는 날이 많았다. 게다가 내가 고등학교에 가기까지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산 아래 집에 살았다.


스물한 살에 나를 낳은 엄마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서 냄비에 달고나를 만들고 카스텔라도 만들고 재봉틀로 팔 길이가 다른 옷도 만들어 주었다. 엄마보다 일곱 살이 많은 아빠는 우리 삼 남매에게 영화도 보여주고 오토바이도 태워주시며 바닷가에 텐트를 칠 줄 아는 낭만이 있는 분이셨다.


젊은 엄마와 낭만이 있는 아빠는 책임질 식구들 앞에서 젊음과 낭만을 삼켜두었다. 엄마는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기 전까지 밭일이며 식당 일을 계속했다. 그런 와중에도 내 기억 속에서 집안은 늘 깨끗했으며 고모들과 삼 남매의 도시락은 항상 정갈하고 가난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여직 공장에서 보일러 기사로 일하고 계신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집에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기저귀를 가는 거며 죽을 넘기는 거며 오롯이 감당하셨다. 어느 날은 엄마가 할머니를 안고 일으키시는 모습이 예수님의 희생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부모님은 우리 삼 남매의 부모보다는 자식의 도리에 더 치중하며 사셨다.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부모님이 드디어 홀가분해지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해내야 하는 매일의 일과들이 사라지고 세월로 인해 늙어버린 육신과 마주하는 것은 다시 조용히 버텨야 할 계절 같았다. 삼켰던 젊음과 낭만이 쓸쓸함과 공허의 뿌리를 내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줄기를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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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와 책임에 방치된 미분화된 감정 덩이들이 이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힘들었어. 아팠어. 불안해. 섭섭했어.


나는 내 발로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고 여기저기에 소문도 낼 수 있었지만, 부모님은 이명이 있고 여러 신체 증상의 원인을 찾다가 우울증과 불안 장애인 걸 알게 되셨다. 내 아이의 기도와 사랑이 나를 일으켰기에 나도 부모님을 일으키기 위해 기도하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좋아하는 초밥 먹으러 가자.”

“아빠. 요즘 어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친정에 찾아가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이라도 수다를 떨고 오기도 하고 음식을 배달시켜 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새로운 환경에서 일상의 궤도를 찾으며 부모님은 노동이 아니라 운동을, 가족 공동체의 운영에서 연인의 데이트를 하기 시작하셨다.


젊음과 낭만은 돌아올 수 없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더 이상 누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오롯이 그들의 것이다. 버텨온 세월은 하나도 헛됨이 없이 어른의 아름답고 견고한 삶으로 자녀들에게 전수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성취의 뿌리가 충분히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의 줄기가 뻗어나가길. 격려의 포옹을 글로 전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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