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자리에 살아요

by 은송하

언덕은 가팔랐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 짧은 숨을 내쉬자 하얀 김이 수시로 나오는 것이 흡사 내가 작은 용이 된 듯했다. 알싸하게 뺨을 감싸는 겨울의 찬 공기가 되려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언덕의 오른편은 숯골마을이라는 국민주택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진주성 안의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조성된 주택단지였다.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단독주택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다.

국민주택단지와도 꽤 거리가 있는 산 아래 남의 집에서 살다가 국민주택의 연장선상인 언덕 위 주택으로 이사 오기까지 25년이 걸렸다. 옛날 꽤 부촌이었던 주택단지는 이제 인도도 없는 좁은 도로가 불편하고 집을 매수하기는 쉬워도 매도하기는 어려운 동네가 돼버렸다.


언덕의 왼쪽은 남강의 강변을 따라 대단지 아파트들이 이어져 있다. 옛날에 논밭이었던 곳이 1990년대부터 아파트를 짓기 시작해 진양호까지 이어지며 지역의 가장 부촌 중 하나가 되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언덕의 오른쪽과 왼쪽은 쏟아지는 빛의 크기가 달랐다.



경계 지점 같은 언덕 위 골목 안쪽에 우리 집이 있다. 골목길 안쪽, 부모님이 마련한 집은 리모델링을 해서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서는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반짝이는 회색 벽돌에 붉은 장미 넝쿨이 넘어가고 대문 입구에는 개나리 나무가 있어서 봄의 시작과 절정을 볼 수 있는 집이었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시는 할아버지 손길에 작은 마당이나마 풍성했고 마늘이며 깨며 농사지은 것을 다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집까지 가는 골목의 밤은 언제나 상당히 어두웠고, 차라리 아무도 만나지 않는 편이 마음놓였다.


나의 20대에는 늘 이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며 대단지 아파트의 빛을 가늠했다. 오른편의 끝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25년. 그렇다면 언덕 왼편의 끝까지 가는 데는 몇 년이나 걸릴까?


겨울의 늦은 밤이었다. 임용고시에 두 번 떨어지고 기간제 교사를 몇 년 하면서 나름 인생의 쓴맛을 제법 맛보았을 즈음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학원은 과학고등학교, 자사고 입시학원이었다. 당시에 나는 올림피아드와 입시 수업으로 자정에 마치기도 부지기수였다.


시커먼 골목에 삼켜지며 어서 집에 당도하길 원했지만, 길은 끝이 한참이나 남아 보였다. 어떤 연유였을까? 무서웠던 것 같다. 소리가 분명한 것도 아닌데 마냥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의 진동수. 정체를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골목 초입의 오래된 정자나무 위에서부터 찬란하게 빛나는 별의 무리가 내가 고개를 치켜들고 올려다보는 바로 위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분명하게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별자리는 오리온자리였다. 거대한 별 중 이름난 리겔, 베텔게우스, 벨트라미가 있으며, 그리스 신화 속 거대한 사냥꾼 오리온의 이름을 딴 별자리였다. 오리온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안다는 것은, 친근하다는 걸까?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은 불안의 진동수를 낮추고 추위도 잊게 했다. 감탄을 자아냈다.


비교가 필요 없는 오롯이 내가 가야 할 좌표 같았다. 그 뒤로 나는 겨울이 되면 늘 오리온자리를 찾아 하늘을 본다. 남들이 봄 가을을 기다릴 동안, 나는 겨울의 별을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 나는 언덕의 왼편으로 이사 왔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큰길 건너 역세권 신축 대단지의 불빛이 또렷하게 보인다. 이번에는 저곳으로 가기까지 몇 년이 걸릴까? 하고 세지 않았다. 무력감이나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던한 평안이었다.

나는 언제나 오리온자리에서 살고 있다. 존재가 온 곳과 갈 곳, 창조와 죽음, 끝의 끝까지 함께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걸로 족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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