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우리는 살아가며
사랑보다 미움을 먼저 배우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서운함을 느끼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앞에서 마음을 닫고,
때로는 미움이 습관처럼 굳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 미움은 미성숙이었고,
사랑을 알기 위해 거쳐야 했던
여정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나도 그랬다.
오랜 시간, 나는 한 사람을 미워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내 곁에 있었지만 멀기만 했던, 바로 할아버지였다.
그날은 유난히 따뜻한 햇살이 내리던 오후였다.
좋은 날씨에도 대학교 친구들과 오래 어울리지 않고 집으로 들어섰는데,
집안은 낯설 만큼 고요했다.
그러다 작은 방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나는 순간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코끝에 스며드는 묘한 냄새와
바닥에 흩어진 묽은 변의 흔적들.
‘치매’라는 단어로만 알던 현실이
눈앞에서 천천히, 그러나 잔인하게 드러났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할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려 정상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매일 겪었던 하루를,
처음으로 내 손으로 이어갔다.
말없이 치워내고, 씻기고...
할아버지는 욕실에서도
그저 멍하니 먼 곳만 바로 보고 있었다.
아랫도리를 씻길 때도,
아마 감각은 거의 없으신 듯했다.
너무나 큰 종양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이게 더 이상 치료 못한다고 했던 암덩이로구나.'
그 순간, 눈가로 뜨거운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래 품었던 미움이
한꺼번에 쏟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련의 과정은 나에게 속죄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할아버지를 미워했으니까.
엄마를 힘들게 하던 존재라고만 생각하며,
사랑할 줄 모르고 마음을 닫았던
나 자신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작은 것들이 후회의 목록이 된다.
맛있는 것 한 번 사드릴걸.
고스톱 한판 더 즐겁게 같이 쳐 드릴걸...
라디오 틀고 춤추실 때
나도 손뼉 치며 옆에 서 있을걸.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늘 낙천적이던 할아버지라면
천국에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고.
'괜찮다. 충분하다. 사랑한다.'
할아버지가 직접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도,
마치 그렇게 말했을 것만 같은
그 음성이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있다.
한동안 마음속에 가득했던 미움 역시
어느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사랑만이 남았다.
언젠가 나 역시 노년이 되어
누군가 내 앞에서 운다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할 것이다.
괜찮아.
사랑해.
<괜찮아>
시간은 늙어 쪼그라져버렸지.
작아진 틈 사이로
이제야 네가 보여.
늦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