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Dec 03. 2023

맨몸의 그가 슬펐다.

<괜찮아>

남자의 맨몸은 어린 시절에 분명히 봤을 것이다.

아버지? 혹은 남동생?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고조되어 있을 20대 초반, 내가 처음 봤다고 기억하는 남성의 맨몸은 아이러니하게도 슬펐다.

그날은 햇살 따가운 오후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과 동아리방에서 늦게까지 어울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던 날.

집 안이 조용했다. 엄마도 없었다.


그런데 작은 방에서 덜거덕 하는 소리가 불길하게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여다더니, 할아버지가 묽은 변을 바닥 여기저기에 싸놓은 게 보였다. 움직이며 계속 뭉갰는지, 똥들은 여기저기 넓게 퍼져 있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할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려 정상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엄마 혼자 아무 말 없이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고 계셨던 말이야?'라고 잠깐 반성에 잠겼다가,

할아버지를 실로 모시고 가서 옷을 벗겨드렸다.


눈빛이 먼 곳을 멍하니 보고 계신 모습에, 나까지 뭔가 현실감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랫도리를 벗겨내는데도 아무것도 모르시는 듯한 모습. 더군다나 할아버지 성기 옆에는 그보다 더 큰 종양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왈칵 눈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나는 엄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상태도 몰랐구나.  

울면서 할아버지 몸을 씻겨드리고, 이어서 방도 깨끗이 닦아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는 속죄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할아버지를 미워했으니까......

혹처럼 붙어살며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는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다.

왜 그런 미움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았는지, 

지금도 눈물만 툭툭 떨어진다.

맛있는 것 한 번 사드릴걸...

고스톱도 더 같이 쳐드릴걸...

라디오 틀고 춤추실 때 나도 같이 걸...


언젠가는 나 역시 치매에 걸려 누군가에게 맨몸을 드러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누가 나의 곁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내 곁에서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다.

항상 낙천적이던 할아버지는 아마 천국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실지도 모르겠다.

네가 충분히 나와 함께 고스톱 많이 해줬었다고...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나 역시

미래에 그 누군가에게 그렇게 이야기할 테니까......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괜찮아>


시간은 늙어 쪼그라져버렸지.

작아진 틈 사이로

이제야 네가 보여.


늦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너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65세 엄마, 중학교를 졸업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