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내가 만났던 신병교육대대 훈련병은 천여 명이 훌쩍 넘는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내 마음에 뭔가를 새겨 넣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그랬다.
딱 보기에도 "어떻게 군대를 왔지?"라는 느낌을 줬다. '80 언저리의 경계선성 지능'이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5주 내내 이런저런 작고 큰 사고를 쳤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마치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너무 열심히 하려 하다가 문제가 일으킨다는 것이다.
드디어 신병교육의 클라이맥스인 '야간행군'이 시작되었다. TV에서의 어떤 멋진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안타깝게도 관리자인 내 입장에서는 행군을 예정된 시간대로 마치려면 아픈 병사들을 빨리 식별해 앰뷸런스에 실어 버리고, 느린 사람들은 느린 대로 행군 대열에서 탈락시켜야 했다.
어차피 매 신병 기수마다 10여 명 이상씩 발생하는, 예상된 낙오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 훈련병 기수에는 작은 포레스트 검프가 있었다. 정말 느린데, 헉헉 대는 소리를 들으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도무지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아, 이번엔 문제가 심각하구나.
행군 속도가 엄청 느려지겠어.'
나는 라□□ 훈련병에게 악마의 목소리가 되어야 했다. 네 평발에 지금까지 한 것도 최선이라며
군 앰뷸런스에 올라타라고 계속 권했다.
그는 그저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만 계속 외치며 한 발, 또 한 발 내디뎠다.
온몸에 가득 젖은 땀, 발바닥은 물집조차 이미 다 터졌는지 제대로 된 걸음걸이도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대에서 작은 응원 소리가 시작되었다.
"라□□, 파이팅! 1소대 파이팅!"
나중에는 중대 전체의 큰 응원소리로 울려나갔다.
"라□□, 파이팅! 2중대 파이팅!"
저 친구도 하는데,
우리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 때문일까?
그날 처음 봤다.
한 명의 열외자도 발생하지 않은 야간 행군...
모두가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땀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연병장!
경계선성 지능이라 무시당하던 그가 해냈다.
작은 소금이 되어 이백 여명을 똘똘 뭉치게 했다.
그는 아마 지금도 사회의 작은 소금으로,
멋지게 살고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오늘따라 "할 수 있습니다."라는
그 음성이 왜 갑자기 그리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