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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Feb 27. 2024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내가 만났던 신병교육대대 훈련병은 천여 명이 훌쩍 넘는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내 마음에 뭔가를 새겨 넣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그랬다.


딱 보기에도 "어떻게 군대를 왔지?"라는 느낌을 줬다. '80 언저리의 경계선성 지능'이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5주 내내 이런저런 작고 큰 사고를 쳤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마치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너무 열심히 하려 하다가 문제가 일으킨다는 것이다.


드디어 신병교육의 클라이맥스인 '야간행군'이 시작되었다. TV에서의 어떤 멋진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안타깝게도 관리자인 내 입장에서는 행군을 예정된 시간대로 마치려면 아픈 병사들을 빨리 식별해 앰뷸런스에 실어 버리고, 느린 사람들은 느린 대로 행군 대열에서 탈락시켜야 했다. 


어차피 매 신병 기수마다 10여 명 이상씩 발생하는, 예상된 낙오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 훈련병 기수에는 작은 포레스트 검프가 있었다. 정말 느린데, 헉헉 대는 소리를 들으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도무지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아, 이번엔 문제가 심각하구나.

 행군 속도가 엄청 느려지겠어.'


나는 라□□ 훈련병에게 악마의 목소리가 되어야 했다. 네 평발에 지금까지 한 것도 최선이라며 

군 앰뷸런스에 올라타라고 계속 권했다.

 

그는 그저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만 계속 외치며 한 발, 또 한 발 내디뎠다.

온몸에 가득 젖은 땀, 발바닥은 물집조차 이미 다 터졌는지 제대로 된 걸음걸이도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대에서 작은 응원 소리가 시작되었다.

"라□□, 파이팅! 1소대 파이팅!"


나중에는 중대 전체의 큰 응원소리로 울려나갔다.

"라□□, 파이팅! 2중대 파이팅!"


저 친구도 하는데,

우리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 때문일까?

그날 처음 봤다.

한 명의 열외자도 발생하지 않은 야간 행군...

모두가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땀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연병장!


경계선성 지능이라 무시당하던 그가 해냈다.

작은 소금이 되어 이백 명을 똘똘 뭉치게 했다.


는 아마 지금도 사회의 작은 소금으로,

멋지게 살고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오늘따라 "할 수 있습니다."라는

그 음성이 왜 갑자기 그리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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