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극단에서는 1년에 한 번뿐인 연극 상영만큼이나 중요한 행사가 있다.
'배역 오디션'
이상하게도 조연이지만, '미자'역에 마음이 끌렸다.
내 삶의 가장 긴 기간을 차지했던, 과하게 씩씩한 '여군'이라는 배역을 소화했던 경험 때문일까?
극 안에서는 반대되는 캐릭터에 서보고 싶었다. 미자는 젊은 시절 서울에서 술집을 전전하다 나이 들어서야 귀향을 했다.
그런데 여전히 시골 마당에 나가 화려한 옷을 한 무더기 사들고 오고는 한다.
이곳에서도 술집을 하는 거라서?
아니다. 그녀는 줄곧 포기할 수 없는 꿈 속에 산다.
'가수가 되는 꿈'
아마 과거에 술집을 전전한 이유도 노래 부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동네 가수 미자. 진짜 가수가 되고 싶은 미자.
오디션에서는 대사 암기는 기본이고 의상은 필수다. 그런데 미자에게는 '노래'야말로 반드시 따라붙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시대배경에 따라 70년대 노래를 열심히 찾았다.
그러다 찾아낸 노래가 바로 패티김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였다. 몇 주간은 점심을 먹고 나면 다른 직원들 없는 으슥한 곳을 찾아 열심히 간드러지게 노래하는 연습까지 했더랬다.
그런데 오디션 당일.
나는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급성심근경색이 의심돼 응급실로 실려간 엄마에게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눈물을 옆으로 주룩주룩 흘리며
'나 죽는 거니?'라고 읍조리듯 말하는 엄마에게는 형언하기 힘든 어떤 두려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괜찮을 거야, 엄마."
사실 나도 두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스텐스 시술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안 하던 기도까지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의사가 나와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여전히 후들후들거리는 마음에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급성심근경색'이 아니란다.
'급성심근염'으로 약물치료와 휴식이 필요한 상황.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7시.
극단 오디션 시간이었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대신 거실에 섰다.
단 하나뿐인 나의 엄마를 위해 노래 불렀다.
'그대 없이는 못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