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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pr 27. 2024

사투리의 세계로 퐁당

"오메~ 우짜꺼나?"

조용한 커뮤니티실로 사투리 소리가 간드러지게 퍼져나간다. 사실 유심히 들으면 많이 어설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연극단원들 모두 처음 구사해 보는 전라도 사투리가 아닌가?

놀랍게도 우리들 중에는 전라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면서도 열심히 대본을 읽어 내려갔다.


작년에는 뮤지컬 '돈키호테'를 준비하며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는데, 올해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투리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만 유일하게 연변말을 구사하는 역할이었다.

전라도의 마을에 시집온 연변 여인.

나 역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우선 되는대로 대사를 뱉어댔다.

'일 없슴다.'


지금 읽어 내려가는 대본은 올해 초부터 읽어 온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저작권에 저촉을 받지도 않으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가장 재미있다고 손꼽히고 있었다.

그런데 부딪친 난관, 사투리.......


연극이 끝나고 지인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통화.

"언니, 탈북해서 중국 있는 동안 나보다는 연변 사람들 많이 만나봤잖아요? 한 번 들어봐 줄래요? 제가 지금 말하는 게 연변 사투리에 가까운지?"

그런데 나는 의외의 피드백을 받아야 했다.

"너, 평양 말투를 쓰고 있는데......"

"이런,  군대 있을 때 북한 방송을 너무 많이 봤나 봐요."

" 연변 말투는 끝나는 어투가 좀 더 올라가. 범죄도시의 장첸처럼."

언니에게 녹음을 해달라고 매달렸지만, 듣는 귀만 있지 본인도 연변말을 잘 구사할 줄 모른단다.


두 번째 통화.

"엄마, 지금 나 하는 말 맞는지 좀 봐줘요."

다행히 순수 전라도 토박이인 엄마에게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단어 구사나 어투에 약간의 어색함이 묻어 있다고 했다. 결국 다음 주 주말에 대본을 들고 엄마한테 달려가기로 했다.

불효녀 딸, 어쩌다 어버이날에 대본 녹음을 강요하는 사람이 되게 생겼다.    

아빠는 남자 역할, 엄마는 여자 역할.


부모님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드리는 거라며 자기 위안을 하려다 생각해 보니 역시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어버이날 용돈에다가 더 진하게 뭔가를 얹어드려야지......


얼떨결에 부모님을 유년시절의 오리지널 사투리 세계로 돌려보내게 생겼다.  

우리 가족 모두가 전라도 사투리에 퐁당 빠지는 5월이 돼버릴지도 모르겠다.


꽃 피는 5월로 추억 하나 이쁘게 더하기.

'딸 덕에 얼떨결에 사투리 연기'


드라마 좋아하는 아빠의 연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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