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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pr 13. 2024

주상전하의 입맞춤

"감이 떨어져서 안되는데......

 다음 주 화요일에 또 보는 건 어때요?"


주상전하께서 던진 말에 술이 확 깨는 듯했다.

장난스럽게 답해본다.

"전하, 진심이시옵니까?

 브래이든 그 작자와 더 입 맞추고 싶으시옵니까?"


브래이든은 심폐소생술 마네킹의 이름이다.

서울시민 심폐소생술 경연대회까지 이제 2주 좀 넘게 남은 상태. 우리는 퇴근 후 심폐소생술 열공 중이다. 조선시대 왕과 내시로 분해 중전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장인 극단 배우들.


그런데 연기보다 '심폐소생술'이라는 벽에 부딪쳐 허우적대야 했다. 우리 수준을 짐작했는지 이번엔 ○○소방서에서 세 분이나 나타나 지도를 해주셨다. 게다가 이 참신한 최첨단 교육의 세상!

'브래이든'이라 불리는 마네킹과 핸드폰 앱을 연결하면 심폐소생술 수준이 자동 측정된다.

처음 시작할 땐 60점대 기록에 심장 압박점 위치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하지만 소방관님들의 세심함 지도 덕에 이제 80점대는 가뿐해졌다.


"우리 오늘 90점 넘기지 못함 집에 못 가요."

지엄하신 주상전하께 감히 명령 내린 것을,  나는 곧 후회해야 했다. 이제 흉부 압박은 웬만큼 하는데, 희한하게도 호흡을 불어넣기가 쉽지 않았다. 

민감한 브래이든은 턱을 살짝만 덜 제쳐도, 코를 약간만 덜 막아도 호흡이 들어가지 않았다.


옆에 있는 주상전하도 쉽지는 않았나 보다. 최고점 96점까지 찍고 나더니 하얀 얼굴로 어지럽다며 비틀거린다.

양가감정이 스친다. 나는 아무리 해도 86점이 최고점인터라 정말 부럽지만, 저렇게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싶진 않았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2인 심폐소생술 점수가 잘 안 나오네. 전하 혼자서는 정말 좋은데......"


그렇게 연습 두 시간 경과, 드디어 해냈다.

'91점'


이렇게 뛸 듯이 기쁜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난 손바닥을 보니 빨갛게 부어 있다. 손등에 생겼던 멍에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요령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아프다."

어깨도 뻐근하고 몸도 피곤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뒤풀이로 술 한잔 하는데, 주상전하께서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셨다. 일주일 전 출근하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쓰러진 사람을 봤단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전문적으로 119를 부르도록 지시하고 환자를 조치더란다. 정말 대단해 보였다고 한다.


오늘 연습을 그렇게 하고도 화요일에 또 만나자는 그의 말 뒤에 숨어있었던 마음이 이런 것이었구나.


왕이시여~

 눈에는 당신 역시 이미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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