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필
고등학교에 들어온 이후, 나는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마주했다.
예전엔 그래도 ‘잘한다’는 말을 듣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매번 시험지에 고개를 숙이고
성적표 앞에선 늘 죄인처럼 숨죽이게 되었다.
모두가 나보다 나아 보였고,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스스로를 원망하는 날이 많아졌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쳐도 머릿속은 온통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말로 가득 찼다.
시간이 흘러도 나만 제자리에 남은 것 같고,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는 벽은 점점 더 단단해지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책을 펴는 것조차 버거운 날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포기’라는 단어가 어느새 나를 유혹했고,
그 단어가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질 만큼, 나는 지쳐 있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조용히 나에게 문자 한마디를 남겨주었다.
살며시 건넨 “괜찮아”는 그 말 한마디가
내가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을 다 알고 있는 듯해서 괜히 울컥했다.
글자 하나 읽기도 힘들었던 날,
엄마의 따뜻한 말은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빠는 나와 자주 문자하진 않았지만,
내가 전화를 거는 날이면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받아주었다.
내가 부족해도, 내가 못나도, 늘 한결같은 목소리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 한결같음 속에서, 나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랑을 느꼈다.
“네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죄지은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무력감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구명줄이 되어주었다.
그 말들이 나를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더 깊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았을까..
잘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그들은 늘 나를 믿어주었고,
내가 무너질까 봐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난 아이처럼 느껴졌을 때,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자랑스러워해 주었다.
그 사실이,
그 믿음이,
무너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누구보다 약해지고 싶지 않았고 무너진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 앞에서는 처음으로 내 마음을 놓아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또다시 넘어질 것이다.
망설이고, 주저앉고, 때론 울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순간에도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준 그들에게서 온다는 것을.
지금도 그 마음을 안고,
나는 또 한 걸음을 내딛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