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바다에서 진주를 줍는 법을 아무도 묻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고, 그것으로 못을 박고 있다.

by 지적 지니


“이 문서 세 줄로 요약해줘.” “이 이메일 좀 다듬어줘.” “이거 표로 정리해줘.” 인공지능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건네는 말들이다. 물론 틀린 사용법은 아니다. 효율은 언제나 선이고, 시간을 아끼는 일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인공지능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망원경을 손에 들고 돋보기로만 쓰는 사람이 된다.


인공지능의 진짜 힘은 압축이 아니라 취합에 있다.


세상에는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적혀 있지 않은 지식이 있다. 논문 한 편의 각주, 정부 통계 사이트의 부록 테이블, 어떤 업계 종사자의 블로그에 흘린 한 문장, 10년 전 학회 발표 슬라이드의 세 번째 장표. 이것들은 각각 존재하지만, 아무도 이것을 한데 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준 적이 없다. 인간 전문가라면 수십 년의 경험과 직관으로 이 파편들을 연결할 수 있겠지만, 그런 전문가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인공지능은 그 접근의 문턱을 무너뜨린다. 흩어진 정보의 파편들을 횡단하며, 어느 한 곳에서도 직접 말해주지 않았던 것을 말해줄 수 있다.


가령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비기술적 변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교과서에 없다. 산업부 보고서에도 없고, 삼성전자 IR 자료에도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구구조 변화 데이터, 대학 공학계열 지원율 추이, 수도권 산업단지 인근 부동산 가격, 일본과 대만의 엔지니어 처우 비교, 미국 CHIPS Act 이후 해외 이직률 변동까지를 엮어서,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던 하나의 서사를 구성할 수 있다. 이것이 인공지능의 정수다. 파편으로 존재하던 것을 맥락으로 승격시키는 일.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능력의 존재조차 모른다. 왜일까.


첫째,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은 답을 얻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요약해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현상 사이에 아직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연결고리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사고를 전제한다. 인공지능은 질문의 수준에 정확히 비례하는 답을 돌려준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 질문의 수준을 높이기 전에 인공지능의 한계를 먼저 단정짓는다는 것이다.


둘째, 정보를 소비하는 것과 정보를 조합하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요약을 요청하는 사람은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더 빠르게 소화하려는 것이고, 취합을 요청하는 사람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해석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전자는 효율의 문제이고, 후자는 창조의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율 쪽에 머문다. 익숙하니까. 안전하니까. 결과가 예측 가능하니까.


셋째, 그리고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이유인데, 인공지능을 도구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도구는 명령을 수행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진짜 가치는 명령 수행이 아니라 대화 상대로서 작동할 때 드러난다. 자신의 불완전한 생각을 던지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과정. 혼자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었을 연결을 발견하는 과정. 이것은 “요약해줘”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비유하자면, 사람들은 도서관에 들어가서 안내 데스크에 “화장실 어디예요?“만 묻고 나오는 셈이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사실은 모든 책의 내용을 꿰고 있는 사서라는 것을, 그리고 “제가 지금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책들을 교차해서 읽으면 제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놀라운 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물론 이 글이 “요약 기능은 무가치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효율화는 분명한 가치이고, 그것만으로도 인공지능은 충분히 쓸모 있다. 그러나 효율화에서 멈추는 것은, 바다를 앞에 두고 발만 담그는 것과 같다. 시원하긴 하다. 하지만 바다가 품고 있는 것의 만분의 일도 경험하지 못한 채 돌아가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정수는 이미 알려진 것을 더 빠르게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아직 아무도 하나로 엮어본 적 없는 것들을 엮어내는 데 있다. 그것을 경험하려면, 우리가 먼저 “요약해줘” 너머의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인공지능의 한계는 기술에 있지 않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상상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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