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는 하나의 이름이 가리는 것들

조세정책의 두 갈래 길

by 지적 지니


오늘날 조세와 재분배를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단어 중 하나는 ‘부자’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한데 묶는다. 현대국가의 인식 저편에서 ‘부자’는 대체로 하나의 집합처럼 취급되지만, 실제로는 그 내부에 전혀 다른 두 종류가 공존한다. 하나는 자본 기반 부자이고, 다른 하나는 고소득 노동 기반 부자이다. 전자는 자산, 지분, 배당, 자본이득, 기업 소유를 통해 부를 증식하는 사람들이다. 후자는 의사, 변호사, 고급 엔지니어, 전문경영인, 금융 전문가, 스타 개발자처럼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노동소득을 창출하는 사람들이다. 둘은 모두 높은 소득 구간에 포착되지만, 부를 형성하는 방식도 다르고, 세금에 반응하는 방식도 다르며, 경제 전체에 미치는 효과도 다르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진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힘이 대체로 노동소득 그 자체보다 자본의 자기증식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소득 노동자는 매년 높은 소득을 벌 수 있지만, 그의 소득은 대체로 자신의 시간, 기술, 네트워크, 직업적 기반에 묶여 있다. 반면 자본 기반 부자는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을 다시 자산으로 전환하면서, 자신의 노동 투입과 무관하게 부를 복리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육체와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자본은 규모의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레버리지 위에서 훨씬 빠른 속도로 팽창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사회의 격차를 밀어 올리는 핵심 동력은 대체로 ‘높은 연봉’보다 ‘높은 자산의 자기증식’에 있다.


문제는 주요 선진국들의 조세 체계가 이 두 집단을 충분히 분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주어진 이코노미스트 기사도 지적하듯, 오늘날의 국가는 세전 불평등을 상당 부분 세후 재분배로 상쇄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누진 과세와 이전지출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고, 상위 소득계층은 국가재정의 핵심 재원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 재분배의 설계가 대체로 ‘소득’이라는 단일 기준 위에 놓이면서 문제가 생긴다. 자본 기반 부자와 고소득 노동 기반 부자가 같은 ‘고소득자’ 범주에 포섭되고, 국가 역시 이 둘을 하나의 과세 대상으로 다루기 쉽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정해 보이는 이 일괄적 분류가 실제로는 불균등한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자본 기반 부자와 고소득 노동 기반 부자는 국가에 묶여 있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본은 국경을 넘기 쉽다. 자산은 이전될 수 있고, 법인은 재편될 수 있으며, 거주지는 바뀔 수 있다. 반면 고소득 노동자는 대개 자신의 일적 기반에 깊이 묶여 있다. 특정 병원, 특정 법률시장, 특정 산업생태계, 특정 연구환경, 특정 기업조직이 있어야 지금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본 기반 부자는 세부담이 높아지면 비교적 빠르게 이동하거나 구조를 바꿀 수 있지만, 고소득 노동 기반 부자는 같은 방식으로 탈출하기 어렵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동일한 ‘부자증세’를 설계하면, 제도는 명목상으로는 상위계층 전체를 겨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동하기 어려운 쪽, 즉 노동 기반의 고소득자에게 더 무겁게 작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바로 여기서 하나의 위험한 정책 루프가 시작된다. 먼저 불평등이 심화되면 재분배 여론이 들끓는다. 그 결과 부자증세가 정치적으로 통과된다. 그러나 이때 자본 기반 부자는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부는 자산을 해외로 이동시키고, 일부는 법적 구조를 바꾸며, 일부는 아예 다른 조세관할로 떠난다. 물론 모든 자본이 즉각 도망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이코노미스트 기사도 초부유층의 이탈과 절세의 규모가 여전히 논쟁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자본이 노동보다 훨씬 높은 이동성과 회피 여지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반면 고소득 노동 기반 부자는 자신의 직업적 기반을 놓고는 같은 수준의 소득을 재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남아서 세금을 낸다.


이때부터 문제가 누적된다. 고소득 노동 기반 부자는 단순히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아니다. 대체로 이들은 한 사회에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핵심 인적자본이다. 첨단산업의 연구개발, 복잡한 금융 서비스, 의료, 법률, 기술 창업, 글로벌 기업 운영은 이런 인력에 크게 의존한다. 그런데 이들이 점점 더 자신이 “자본 기반 초부유층 대신 손쉬운 과세 대상으로 취급된다”고 느끼게 되면, 노동 의욕과 위험 감수 성향이 약해질 수 있다. 추가적인 노력, 승진, 창업, 투자, 장시간 노동에서 얻는 한계 보상이 낮아질수록 이들은 더 보수적으로 행동할 유인이 생긴다. 이는 단번에 붕괴하는 변화가 아니라, 경제 전체의 역동성을 서서히 마르게 하는 변화이다.


그 결과 불평등은 역설적으로 저성장 속에서 고착화된다. 자본 기반 부자가 빠져나가면 산업에 흘러들어오던 자본과 현금흐름이 줄어든다. 투자유치는 더 어려워지고, 기업은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자금을 구할 수 있다. 동시에 고소득 노동 기반 부자는 과로와 고세율, 정치적 적대감 속에서 생산성을 최대치로 발휘할 유인을 잃는다. 자본은 얇아지고, 인재의 의욕은 닳아간다. 그러면 성장률은 떨어지고, 성장의 과실이 줄어든 사회에서는 다시 분배 갈등이 격화된다. 그리고 국가는 다시 한 번 ‘부자 전체’를 향한 더 강한 과세를 검토하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이동 가능한 자본은 더 빨리 이탈하고, 남아 있는 고생산성 노동자는 더욱 피로해진다. 불평등을 고치기 위해 꺼낸 처방이 장기적으로는 성장 기반을 갉아먹고, 성장의 둔화는 다시 더 강한 재분배 요구를 낳는 악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부자증세 자체를 선악의 문제로 단순화하지 않는 일이다.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보여주듯, 지난 수십 년간 선진국의 조세제도는 대중의 통념보다 훨씬 더 누진적으로 변해 왔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세후 불평등은 세전 불평등의 악화를 상당 부분 상쇄했다. 즉 재분배는 실재했고, 그것은 국가를 어느 정도 ‘로빈후드화’했다. 그러나 같은 기사도 동시에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을 드러낸다. 국가가 상위 소득층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수록, 조세정책은 더 정치적이고 더 마찰적인 문제가 된다. 재정은 더 소수의 납세자에게 기대게 되고, 그 소수 안에서도 누가 더 부담하는지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자본 기반 부자와 고소득 노동 기반 부자를 구별하지 못하면, 국가는 불평등의 원인과 세원의 성격을 혼동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부자증세가 아니라,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고려하는 더 섬세한 가중치의 조세정책이다. 핵심은 ‘부자에게 더 걷느냐, 덜 걷느냐’가 아니다. 어떤 부에서 얼마나 걷고, 어떤 활동에는 어떤 유인을 남겨 둘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본이득, 상속, 지분 이전, 국제적 자산 이전, 조세회피 구조에는 더 정밀하고 집요한 과세가 필요할 수 있다. 반대로 장시간 고숙련 노동, 창업 초기의 위험 부담, 기술 혁신, 산업 현장에서의 고부가가치 활동에는 기계적 누진만이 아니라 생산성 유인을 보존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국가는 진짜 불평등을 밀어 올리는 축에는 더 날카롭게 대응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성장 엔진을 갉아먹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조세의 문제는 단순히 더 많이 걷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축적의 원천이고, 무엇이 사회의 동력을 만드는가를 구분하는 문제이다. ‘부자’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자본과 노동을 뭉뚱그리는 순간, 국가는 가장 쉽게 잡히는 쪽에만 세금을 매기고 가장 빨리 빠져나가는 쪽은 놓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불평등을 바로잡고 싶다면, 먼저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힘의 구조부터 정확히 분해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망치가 아니라 더 정밀한 칼이다. 그리고 그 칼끝은 단순한 소득의 크기가 아니라, 부가 형성되고 이동하고 재생산되는 방식의 차이를 겨눠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흐름과 구조, 그리고 불가피성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