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뒤섞인 거래-팽창주의
2026년 3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 앞에 서서 쿠바를 향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내가 해방시키든, 아니면 인수하든. 내 생각엔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쿠바 대통령 미겔 디아스-카넬의 축출을 미국 측이 협상 테이블에서 핵심 목표로 삼았다는 보도와 맞물린다. 섬 전체가 정전으로 마비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를 “실패한 국가”로 규정하면서도 “땅은 아름답다”는 말을 덧붙였다.
쿠바는 베네수엘라 석유 공급 차단과 미국의 장기 봉쇄로 에너지 위기가 극에 달했다. 1천만 명이 전기 없이 살아가는 상황에서 미국은 쿠바 정권의 교체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 발언은 단순한 중소국 압박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라는 빅파워와의 장기 대결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쿠바는 러시아의 신호정보 기지와 중국의 잠재적 투자 교두보 역할을 한다. 베네수엘라는 중국의 석유 대금 결제 파트너이자 러시아 군사 거점이며, 이란은 러시아 드론 공급망과 중국 에너지 우회 경로다. 이 세 중소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것은 서반구와 중동 외곽의 빅파워 거점을 무력화하고, 달러 체제 밖 대안 결제망과 에너지 공급망을 끊는 효과를 노린 전략이다. 트럼프가 쿠바를 “다음 차례”로 지목한 배경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트럼프 본인의 거래적 사고방식과 참모진의 장기적 어젠다가 뒤섞인 결과다. 트럼프는 “아름다운 섬”,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부동산 개발업자 스타일의 언어를 구사한다. 반면 쿠바 압박은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같은 강경파의 개인적 신념과 정치적 자산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전략적 결투장을 세팅하는 것인지, 아니면 참모들의 계획을 자신의 스타일로 실행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 움직임을 보면 순차적 준비가 아니라 동시다발적 압박이다. 중국과의 관세 전쟁, 러시아와의 우크라이나 협상, 이란 핵 압박, 쿠바 공세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는 플랭크 시큐어링이라기보다는 전선 전체를 여는 방식에 가깝다. 오히려 중소국 압박이 강해질수록 중국과 러시아는 이 나라들을 더 적극 지원할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의 행보는 빅파워 결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최대한 많은 레버리지를 쌓는 과정이다. 쿠바 압박은 러시아에게 서반구 거점 상실 가능성을, 이란 압박은 중동 영향력 축소를,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는 글로벌 유가와 중국 에너지 교란 카드를 제공한다. 트럼프의 본질은 결국 ‘빅딜’이다. 그는 싸우기보다는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하려는 딜러다.
이 모든 움직임의 밑바탕에는 트럼프 특유의 위계적 국제질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주권을 법적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 힘으로 증명되는 것으로 본다. 중국과 러시아는 협상 상대이자 존중의 대상이지만, 쿠바·베네수엘라·이란은 관리 대상이자 거래 칩이다. NATO 동맹국조차 “돈 안 내면 보호 안 해준다”는 조건적 존재로 취급된다. 트럼프가 존경하는 푸틴, 시진핑, 김정은은 모두 “강하다”는 저항력을 가진 자들이다. 반대로 약함을 드러내는 자는 경멸한다.
이런 관점은 19세기 유럽의 빈 체제, 즉 열강들이 세력권을 분할하고 소국은 테이블에 앉을 자격조차 없던 구조를 닮았다. 트럼프가 꿈꾸는 21세기 세계는 미국·중국·러시아가 각자 영역을 관리하는 빅파워 컨소시엄이다. UN 같은 다자 체제는 불필요한 노이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 모순이 있다. 미국이 70년간 유지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소국에게 법적 보호와 제도적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냈다. 트럼프가 소국을 거래 칩으로 다루면 소국들은 미국 체제에 머무를 이유를 잃는다. “미국도 결국 힘으로 지배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퍼지면 중국이 내세우는 내정 불간섭 원칙이 상대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인다.
미국이 명분을 포기하는 순간이 핵심이다. 과거 미국은 인권·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행동에서 위선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 명분 자체가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국내 여론, 동맹 설득, 국제법 언어가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이 브레이크를 공식적으로 제거했다. “쿠바를 인수하겠다”는 발언은 과거 어느 대통령도 입 밖에 낼 수 없던 말이다.
소국 입장에서 미국은 이제 “힘이 있으면 그냥 한다. 명분도 없다”는 존재가 됐다. 중국의 내정 불간섭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 가치 제안으로 부상한다. 중국도 이익을 위해 개입하지만, 애초에 보편 규범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소국들은 배신감 대신 거래 실패로 받아들인다. 미국이 명분을 포기하면 소국들은 순수하게 조건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영국 패권의 붕괴도 비슷한 교훈을 준다. 영국은 자유무역과 문명화 사명을 명분으로 제국을 유지했으나, 명분의 정당성이 소진되자 군사력 약화 이전에 이미 무너졌다. 미국이 지금 걷는 길은 그와 같다.
트럼프의 쿠바 압박은 단순한 중소국 제압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70년간 쌓아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명분을 포기하고, 힘의 언어만 남기는 패러다임 전환 시도다. 명시적 가치의 위선은 규범의 최소 문법이었다. 그 문법이 사라지면 세계는 힘의 언어만 남는데, 그 언어를 더 오래 효율적으로 말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반드시 미국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정당성은 복원이 극도로 어렵다. 쿠바·이란·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들은 이제 외교의 주체가 아니라 빅파워 딜의 조건변수가 됐다. 트럼프 이후 세계는 이전으로 단순히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출처
트럼프 대통령 백악관 집무실 기자회견 장면 출처: AP Photo / Evan Vucci (White House official pool) – 2025~2026년 백악관 공식 행사 사진
쿠바 정전 거리 야경 (자동차 헤드라이트) 출처: Reuters / AFP – 2024~2025년 쿠바 대정전 관련 현지 취재 사진
지정학 세계지도 (미국·쿠바·베네수엘라·중국·러시아·이란 강조) 출처: Stratfor / CFR 스타일 지정학 분석용 일러스트 (공개 템플릿 기반 커스텀 맵)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악수 사진 출처: Xinhua News Agency + Kremlin.ru 공식 사진 (2024년 정상회담)
Miguel Diaz-Canel 쿠바 대통령 인물 사진 (쿠바 국기 배경) 출처: / Getty Images
1815년 빈 회의 역사 판화 (열강 분할 장면) 출처: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19세기 원판, 1818년경 독일 판화)